<말센스>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고독의 시간이 공감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고독이 창의성을 촉진시키고 생각을 깊게 한다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많다고 한다. 고독은 외로움과 연결된다. 외로움은 고통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의 맛을 본 사람이 그 인성이 깊어지고 깊어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고독의 시간이 공감력을 높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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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는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는데 카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정의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 지음)

 

이렇게 보면 페르소나를 부정적 의미로만 볼 수 없다. 이중인격의 가면을 벗어라 라는 말을 한다. 부정적인 말이다.

그러나 페르소나도 인간의 인격의 한 단면이다.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인격을 유지하며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조직이나 집합체에 소속되었을 때 그와 타협하는 인격이 필요하다. 그것이 건전하다면 페르소나를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어떤 가면을 쓸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 저)이란 책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전문가는 어떤 일에 동기를 느끼지 않을 때, 즉 흥미롭지 않을 때도 그 일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반면 아마추어는 되는 대로 행동한다고 한다. 아주 작은 습관이 우리는 큰 능력을 갖게 한다고 믿는다. 그래도 이것은 실천의 문제고 인내의 문제다. 그 능력을 갖게 된 전문가는 끝까지 아주 작은 습관을 실천한다. 때론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 흥미롭지 않고 지루할 때도 그 습관을 계속해나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가변적 보상을 이야기 한다. 더 이상 동기부여 되지 않고 흥미를 잃을 때 가변적보상이 기대된다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흘러나와 그 습관을 계속해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지루하지 않도록 계속 변화되는 보상이 뒤따르겠는가. 즉 아주 작은 습관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인내의 힘, 지루함을 이기는 인내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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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저와 어머니의 한 장은 만원입니다. 저는 만원단위로 뭐든지 생각하고 그 이상은 계산을 잘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장 이라면 묵시적으로 백만원이거나 천만원이거나 혹은 일억을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 사람은 두장 짜리야 하면 월급이 2백만원을 받거나 아니면 2천만원을 받거나. 사람마다 어쩠든 단위가 틀려요.

저와 어머니한테는 한 장이 만원입니다. 그 이상은 계산을 잘 못해요. 우리아버진 돈이 많아도 어머니는 생활비를 타서 쓰시니까 평생 만원단위로 사십니다.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는 외식하면 큰일 나는 줄 아셨어요. 왜냐하면 둘이 먹으면 벌써 만원이 넘어가잖아요. 그래서 칼국수도 못 사드셨어요. 어머니가 칼국수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제가 엄마와 칼국수란 시를 썼겠습니까.

그래서 한번은 엄마에게 칼국수를 사드렸는데 내가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만드시면 만 원 안에서 재료사서 온 식구가 다 먹는데 외식하면 벌써 만원이 넘어가잖아요. 그 말에 짠했어요. 그렇게 아끼셔서 저희 자식들이 풍요를 누리고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와 칼국수만 생각하면 저는 언제나 마음이 짠해요.

어쨌든 이 만원이 얼마나 한 사람에게 한 가정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돈의 단위인지

만원이 얼마나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철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엄마 아버지랑 살았는데 돈을 벌어서 통장에 돈이 있어도 돈을 못 벌어서 통장에 돈이 없어도 엄마한테 맨 날 만 원만 만 원만’, 그럽니다.

엄마한테 만원을 타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저는 받는 재미, 엄마는 주는 재미, 그 만원을 받아서 무조건 사는 거예요. 그 돈 가지고 맥도날드 가서 1500짜리 아이스커피 사먹고 치즈 스틱 2조각을 사먹어요. 그렇게만 해도 울고불고 억울하고 슬프고 우울했던 것 싹 다 잊어버려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단순하고 멍청한 데는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데는 어마어마한 것이 필요 없어요. 만원도 없어 쩔쩔매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 알아요. 그 분들에게는 너무 죄송합니다.

그렇게 만원에도 의미를 두고 살다보니 이제 엄마와 저는 단위가 커져 오만원이 한 장이 되었답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두는 것이고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 원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벌써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이런 행복이라도 누리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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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 오십 세를 넘은 싱글여성이다. 오십을 넘으면 인생에 처연해질 나이가 된다고 말들 한다. 나이 사십은 불혹(不惑)이라하고 오십은 지천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이되면 종교에 귀화하는 것도 의례적이다. 

난 여성이고 가정에선 막내이고 현실경험도 많이 없고 여러 가지 나의 환경적 특성상, 유전적 특성상 나는 감정이입을 잘하고 이성적인 면보단 감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던 같다. 그래서 항상 타인에게 끌려가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감정이입이 안 되면 상처입고 집착을 하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하거나 극과 극의 결단을 하는 사람이었다. 상처를 입어 집착을 하면 보통 애()보다는 증()이 커져 많은 감정적 손실, 영혼의 괴로움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아예 관계를 단절하면 사회생활에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관계의 탄력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게 잘 안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또한 거기에는 개똥철학이나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정의감도 한 몫 한다.

그래서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인간관계엔 거리감을 두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다다가 나이 40대에 이것도 지혜로운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때부터 교육받아 사람을 이용가치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감과 위로, 칭찬이 인간관계에선 제일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론 인간관계에 모든 문제가 풀릴 줄 알았는데 난 지금 돌아보아도 인간관계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매일매일 칭찬하고 같이 공감하고 때론 위로해 주어도 싸구려 취급을 하거나 아님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거나 즉 상대가 대가를 바라고 저란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항상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이용가치로 대한다고 불만을 갖거나 아님 자신을 이용가치로 생각하라고 접근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이부터 떠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씩 만나다 보면 이 오해로 관계가 어려워지고 불쾌해져서 관계를 끊게 된다.

또한 인간관계에 더 서툴렀던 20, 30대 초반에는 무조건 집착에 빠지기도 했다. 판단력이 흐려진 채. 집착이 얼마나 영혼을 파괴시키는 지, 성인이라면 다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일련의 인간관계의 실패를 통해 거리감을 두라는 표현보단 인간관계에서도 성인으로서 기술적으로든지, 감정적으로든지 독립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많은 자유로움을 느낀다. 많은 우울감, 상처들이 감정적 독립을 이루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터득하지만 세상을 혼자 살 수 만은 없는 법, 서로 어울려야 하는데, 아님, 가족이라도 함께 잘 지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우울해 하고 슬퍼하고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현대인에게 무서운 병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이 해결책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어디서 찾을까? 종교일까? 삶의 경험을 통한 지혜일까? 아님 또 깨어지고서라도 사람에게서 찾을까? 아님 돈으로 해결할까?

받아들임, 즉 수용과 피안으로의 도피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대한 소망 이런 것들이 살다보니 정말 중요한 것을 알았다. 이 나이에 이젠 종교가 악세사리쯤이 아니라 정말 절실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종교라고 표현했지만 모든 종교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기독교엔 그 답이 있다. 기독교는 현대인이 제일 두려워하는 외로움, 죽음에도 답을 준다. 그답은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감정적 독립과 자유로움을 맛볼 때 외로움도, 죽음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과 돈, 사람에게서 대안을 찾지 않고 그것들에서 독립을 이룬다면 멋진 성인(成人), 성인(聖人)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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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생활, 김포공항 롯데몰과 함께

 

이 글을 쓰려할 때 약간 눈치가 보였다. 누가 나에게 상업적인 결탁이나 대가를 노리고 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라도 하면 어쩌나...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웠다. 나 자신이 떳떳했기 때문이다. 난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주제로 사색을 하면서, 난 좋아하는 일이 사색하고 글쓰는 일인데 이것이 환경의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나의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과 시간,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인지 이유를 찾아보고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이 많은 싱글여성의 어려움을 않고, 그 이유로 인한 직업이 불안정했던 시기, 난 휴지기를 갖고 나의 삶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거기에는 시간적 계산, 경제적 계산, 공간적 계산 등 모든 머리를 굴리며 내가 찾은 대답은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10시 반이면 문을 여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인 김포공항 롯데몰을 찾는 것이었다. 왜 찾는가? 왜 사랑했는가? 그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 밝혀보고 싶다.

 

첫째, 거기에는 매일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첫 번에 이 말부터 하니, 사치스런 여자라 오해받을까 겁나지만 그 오해도 풀 수 있는 곳이 롯데몰이다. 매일 무언가를 사도 그다지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몇 천원부터 몇 백 만원상당의 물품까지 모든 종류의 물품의 집합장소가 거기에는 마련되어 있었다. 난 돈이 궁색했을 때 집에 필요한 라면이라도 사면서 이 생활을 즐겼다. 가끔가다 만 원짜리 귀걸이라도 사며, 마음에 드는데 싸기까지 하다니... 그러한 생각으로 항상 나에게 주어진 불행한 일들을 말끔히 날려버리고 기뻐하며 보냈다.

 

두 번째, 거기에는 매일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사고 먹고... 머리가 빈 단순한 여자라고 오해받을까 겁난다. 그러나 먹는 일이 해결안 되면 무슨 일을 시도하겠는가. 처음에 내 궁색한 경제적 지갑의 사정으로 여기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동네 싼 집을 전전할까 했는데 이 고민도 해결되었다. 먹거리가 몇 천원부터 비싸봐야 2만원 안팍으로 다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2천원의 롯데리아 햄버거 하나와 천원의 콜라 스몰사이즈 하나, 모두 3천원이면 해결된다. 그러다 롯데백화점 지하의 김밥, 떡볶이, 만두 등 싸고 다양하게 식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한 것은 백화점 식품코너 곳곳에 정수기가 있어 물이 꽁짜라는 것이다. 생활하다 꼭 필요한 물이 꽁짜이니 고민의 반은 던 셈이다. 그러나 돈이 더 궁색한 날은 카누커피 피스 하나들고 텀블러를 휴대하여 뜨거운 물을 꽁짜로 담고 커피를 타, 빨대로 빨아마신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커피값이라도 절약하기 위한 짤순이의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밥값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우아하게 비싼 커피집에서 마시기도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거기에는 매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말을 하면 그래,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군이 말을 들을까 겁난다. 제일 중요한 시각, 시각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많은 우울감, 불행을 어찌 이겨낼까. 살 수 없어도 눈이라도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살 순 없어도 아이쇼핑하며 나에게 어울릴까 어울리지 않을까, 고운색상에, 멋진 디자인에 감탄도 하면서 공상과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즐거움이다. 몇 만원부터 백만 원 안팍의 옷들을 종류대로 색상대로 디자인대로 감상하면서 난 사지 못해도 공상으로 껴입는다. 그리고 나에게 최대한 어울리는 것으로 선택을 해 하나 구입한다. 그것이 겨우 5만원 안팍일 때, 거기서 오는 충족감, 그 자체로 기뻐하며 감사한다. 비싼 걸 못 사도 나 자신의 여건에 불행을 느끼거나 소위 클래스, 계급적인 인식, 차등의 인식을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김포공항 롯데몰에서 그 간격, 그 차등은 커버가 될 수 있다는 내 안의 충족감(?), 자만심(?), 자존심(?), 자부심(?)(뭐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갑의 사정은 궁색했을지언정.

 

네 번째, 거기에는 매일 독서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몰 안에는 문고가 있다. 문고 안엔 다양한 책과 널찍한 공간과 카페가 있고 고객을 위한 자리가 있다. 커피를 마시며 아무데서나 책을 뽑아와 앉아서 읽을 수 있다. 굳이 책을 안사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척, 티낼 거면 도서관을 선택할 것이지 왜 사치의 대명사인 백화점이 자리한 몰의 문고를 선택하냐,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네 시립, 구립도서관 등 좋은 시설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이런 시설이 잘 된 나라도 드물 것 같다. 그런데 왜 굳이 몰 안의 문고를 좋아하냐면 조잡한 변명이 될 수도 있지만, 우선 도서관은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게 넓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책장과 책상 몇 개가 자리할 뿐이고, 거기다 음료수가 반입이 안 되고, 일일이 책을 도서번호를 찾아서 읽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이 구속감처럼 여겨지고, 눈치로부터의 해방, 더 많은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나에겐 몰 안의 문고가 딱이다. 그래 그거다. 눈치로부터의 해방, 자유로움 자체. 왜 그런고 하니 몰 안에 모든 상점에는 문이 없다. 칸막이도 없다. 문이, 칸막이가 있어도 열려있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점원이 문입구서부터 따라붙으며 통제하며 서비스하는 일 자체가 없다. 나는 눈치보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기껏 문을 열고 들어가 휘휘 둘러보며 판단만 하고 되돌아가는 자체가 나는 눈치가 보이고 미안하다. 손님이 들어오기나 말기나 구경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살려면 사고 안 사려면 안 사고 그런 배짱으로 서있는 점원이 편하다.

 

다섯 번째, 거기에는 매일 만보를 채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걷기가 몸에 좋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만보 걷기를 생활화하자고 권장하는데 몰은 그것을 실천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널찍하고 지하부터 지상까지 몇 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그냥 걸어만 다녀도 만보는 충분히 채워지고 2만보까지도 가능하다. 이것도 변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야외에서 걸을 것이지 왜 이곳이냐고 혹자는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유가 확실하다. 가까운 거리를 나가도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거나 대중교통으로 인한 매연과 소음, 걷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매연과 소음이 없는 공기 좋은 곳을 이제는 쉽게 만나지 못한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그런데 몰은 운이 좋게도 집에서 멀지 않고 실내라는 공간에 싸여 있어서 공기가 좋은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소음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손님을 불러드리려 유행하는 음악을 틀어놓거나 시끄럽게 호객 행위하는 자체가 없다.

 

여섯 번째, 거기에는 매일은 아니지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몰에는 온갖 종류의 공간이 있는데 제일 감사한 것은 문고가 있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취미는 온갖 경험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영화도 중요한 나의 글쓰기 소재이다. 이 취미를 포인트를 적용하여 값싸게 즐길 수 있으니 더 없는 행복이다. 예매율 상위에 랭크된 영화는 어떻게든지 보게 된다.

 

나의 몰찬양은 이제 여기서 마친다. 한 가지 바람은 노후에도 이런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몰 안에 노인분들은 볼 수가 없다. 노인분들이 즐길 공간이 무어라 이름지어지든지 그들만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인분들이 동네 복지관이나 노인정밖에 갈 데가 없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노인이 아닌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도 몰이나 백화점을 혼자 못가겠다고 고백한다. 왜 그런지 구구절절이 안 써도 짐작할 것이다. 그들은 이런 곳에서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의 현실과 더 괴리감을 느껴 발걸음을 돌려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노인들도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노인들을 위한 경제상품 개발을 위해 기업들이 나서고 있다. 이제 한두 가지 혜택이 아닌 여러 가지 혜택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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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체질과 승자효과

 

 

혹자는 성공하려면 체질부터 바꿔라. 성공체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체력을 개선하려면 우리의 체질을 바꾸는 노력, 습관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이기는 습관이 승리를 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바로 승자효과라는 것인데 <승자의 뇌>라는 책의 저자는 과학적으로 동물실험을 통해서 이를 입증해 보였습니다. 한 번 싸움에서 이긴 경험이 다음번에서도 이길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승리와 패배는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고 경험의 문제입니다. 한 번 승리한 경험은 뇌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게 하는데 이 맛을 본 동물이 다음 번에서도 승리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 번에 이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어 덜 불안해지고 더 공격적으로 바뀌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임계점도 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습관은 성공하는 확률을 더욱 높여 우리를 승리의 사람, 성공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긴다는 것은 꼭 다른 사람과의 싸움만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습관, 이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공의 체질로 개선하기 위해 항상 이기는 습관, 무엇보다 자신을 이기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정의 內燃

 

감정을 꾹 참고 누르면 병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억누른 감정이 한이 되어 산다고 했다. 우리민족의 정서는 한이다 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인지 언제부터인가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다 표출하자라는 것이 공식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각종 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누르지 않고 그냥 발산된 감정은 위험하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 가솔린을 그냥 태우면 타기만 하지만 실린더 안에서 연소시키면 엔진을 움직이는 힘을 낸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을 그냥 표출한다면 그것은 공중에 분해되는 재와 같아진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감정을 다 표출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데까지 돌이킬 수 없는 어그러지는 관계까지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억누르고 억누른 내면의 힘이 가해질 때 그것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큰 감동이 될 수 있다. 인내가 우리 내면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그것이 선한 방향으로 표출될 때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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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썼다. 나에게 바다란 기다림, 그리움의 정서적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바다하면 넓음과 포용성의 정서적 이미지와 연결시킨다.

세계적 고전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는 어떤 이미지일까? 책 속에 언급된 말을 인용하겠다.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붙인 여성 명사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간혹 상스러운 말로 바다를 욕할 때가 있기는 해도 그런 때 역시 바다는 여자로 여겨졌다. 간혹 젊은 어부들 가운데서는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했다든지, 아니면 상어의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모터보트를 사게 되었을 경우 바다를 남성 명사인 엘 마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경쟁 장소라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여겨 바다가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바다가 사나워지고 모질어질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그러는 것이려니 여겼다. 달이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인과 바다중에서>

 

노인과 바다의 저자 헤밍웨이에겐 바다가 여성으로 여겨졌다. 나도 그의 사상에 동의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바다는 남성보다 여성이다. 바다는 그 넒음과 포용성, 그것이 큰 은혜로 여겨지는 뭔가를 간직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어떤 신비함, 이런 것들이 모두 여성과 연결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성인 어머니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바다는 아무리 맞아도 웬만해선 요동치지 않는다. 지세의 물줄기들이 다 바다로 합쳐진다. 바다가 품고 있는 생물도 정말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바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기다림, 그리움, 그 넓음, 어머니 그렇지만 두려움을 간직하게 하는 신비로운 존재, 그것이 바다다. 나는 산을 보는 것보다 바다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깊은 바다로 나가는 것은 지금도 두렵다. 바다, 그 신비를 더 좋은 글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나의 지적 정서가 여기까지이니 여기까지만 담겠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더 표현해내고 싶다.

 

 

 


 

 

 

아이들에게 강자와 약자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아이만 해도 3학년 정도이면 어른처럼 성숙하고 발달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어린이집에 다녀야 할 정도로 애기같은 아이가 있고 천차만별이다. 남학생 중에는 몸집도 큰아이가 괜히 씩씩거리며 강자인척을 하려고 하는 아이가 있다. 나는 무력으로 자기가 강자임을 나타내려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인정하고 드러내는 사람이다 라고. 그럴 때 사람은 경계를 풀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네트워크 지수, 공존지수를 말하는 시대에 make friends 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씩씩 거리는 흉내를 내며 이런 사람들 곁에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다 도망가고 피해간다 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웃음으로 화답했다. 어린 나이에도 느끼는 게 있나보다.

필자는 이 세상에 폭력과 전쟁이 없기를 진정, 사무치도록 원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가 있다면 가입해서 함께 하고 싶다. 북한의 김정은의 행태가 정말 노심초사 걱정된다. 국제관계에서는 정글에서 보이는 힘의 논리만 작용하는가, 아니 김정은의 행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정말 우호적인 관계, 친구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데...

정말 아쉽다. 언제 핵의 우려에서 벗어날까. 한국 사람들은 태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항상 더 불안해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것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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