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시를 썼다. 나에게 바다란 기다림, 그리움의 정서적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바다하면 넓음과 포용성의 정서적 이미지와 연결시킨다.

세계적 고전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는 어떤 이미지일까? 책 속에 언급된 말을 인용하겠다.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붙인 여성 명사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간혹 상스러운 말로 바다를 욕할 때가 있기는 해도 그런 때 역시 바다는 여자로 여겨졌다. 간혹 젊은 어부들 가운데서는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했다든지, 아니면 상어의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모터보트를 사게 되었을 경우 바다를 남성 명사인 엘 마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경쟁 장소라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여겨 바다가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바다가 사나워지고 모질어질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그러는 것이려니 여겼다. 달이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인과 바다중에서>

 

노인과 바다의 저자 헤밍웨이에겐 바다가 여성으로 여겨졌다. 나도 그의 사상에 동의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바다는 남성보다 여성이다. 바다는 그 넒음과 포용성, 그것이 큰 은혜로 여겨지는 뭔가를 간직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어떤 신비함, 이런 것들이 모두 여성과 연결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성인 어머니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바다는 아무리 맞아도 웬만해선 요동치지 않는다. 지세의 물줄기들이 다 바다로 합쳐진다. 바다가 품고 있는 생물도 정말 다양하다.

그러나 정작 바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기다림, 그리움, 그 넓음, 어머니 그렇지만 두려움을 간직하게 하는 신비로운 존재, 그것이 바다다. 나는 산을 보는 것보다 바다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깊은 바다로 나가는 것은 지금도 두렵다. 바다, 그 신비를 더 좋은 글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나의 지적 정서가 여기까지이니 여기까지만 담겠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더 표현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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