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은 사람이다. 이 오래된 격언은 많은 이들의 가난의 불씨가 되었다.

가난하지만 부자가 되려하지 않고 만족을 하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부를 배척한다. 돈이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행복의 진짜 적이 무엇인지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적이 돈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행복의 진짜 적은 바로 노예화, 즉 자유를 잃은 상태다. 돈으로 더 많은 자유를 살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수록 더 많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잃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이 라이프스타일의 노예가 되게 함으로써 오히려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수많은 부자들과 고소득자들은 지독한 불행을 겪고 있지만 돈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자유를 잃었기 때문에 불행하다. 일에 파묻혀 사느라 좀처럼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고소득자가 하루의 반은 농사를 짓고 나머지 반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가난한 농부보다 행복할 가능성은 낮다.

부의 3요소는 가족, 신체, 자유이다.

2003년 세계가치조사에 따르면 공동체에 강한 소속감을 갖고 가족의 유대가 끈끈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다면 인간의 행복은 배우자나 가족, 친구, 종교적 존재 또는 자기 스스로와의 관계의 질에 의해 매우 크게 좌우된다.

 

그렇다면 돈과 별로 거리가 먼 평범하다는 것은 행복과 가까운가?

평범하다는 것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붐비는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 한 후 여덟 시간을 일하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월급의 10%를 저축하는 것이고 그것을 50년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식이나 로또가 대박나기를 바란다. 이것 역시 사회가 정해놓은 부의 잘못된 정의를 받아들인 결과다. 부자에 비해, 고소득자에 비해 평범하다는 것 자체도 불행할 수 있는 요건이 된다. 평범하다는 것 자체가 현대판 노예라는 뜻도 된다.

 

평범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 모두 행복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왜냐하면 돈으로 자유대신 구속을 사는 꼴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부가 물질적인 것이라고 정의해 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와 행복이 연결되지 못한다. 부의 3요소는 아까 말했듯이 가족, 신체, 자유이다.

 

그렇다면 부, 즉 돈과 행복을 바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돈이 사람을 구속되게 할 수도 있고 돈이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으며, 자유는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

행복은 돈이 아니라 건강과 자유, 그리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얻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 부유한 사람 모두 라이프스타일의 노예가 되면 자유를 잃게 되고, 자유를 빼앗는 것은 부를 함께 빼앗아 간다.

                                                                               - <부의 추월차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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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유명한 왈렌다 효과라는 것이 있다. 실제 있었던 일에 기인하여 생긴 이론인데, 정작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왈렌다 효과로 목숨을 잃었다.

왈렌다는 미국의 유명한 줄타기 곡예사였다. 고난도의 곡예를 안정적이고 정교하게 연기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곡예사로 활동하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요한 고위급 인사가 관람하러 오자 왈렌다가 공연을 펼치게 되었다. 왈렌다는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중요인사가 누구인지 알게 되자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번에도 무조건 성공해야 해, 이번 공연에서 성공하면 나는 줄타기 공연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만들 수 있고, 공연단장도 나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줄거야, 그래서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돼. 왈렌다는 공연전날부터 평소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동작 하나하나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마침내 공연 날이 되었다. 왈렌다는 좀 더 실감나고 아찔한 공연을 펼치기 위해 구명용 밧줄 없이 줄타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기에 구명용 밧줄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왈렌다가 난도가 높지 않은 동작 두 개를 막 끝내고 강철 와이어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그만 10미터 높이의 공중에 떨어져 목숨을 읽고 만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에 그의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 공연에서 사고가 날 줄 알았어요. 공연에 나가기 전부터 계속해서 중얼거렸거든요. 이번 공연은 매우 중요하니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저 줄타기를 무사히 끝낼 생각만 했지. 그 일로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왈렌다는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그 결과가 가져올 이해득실에만 연연하다 집중력을 잃고 말았다. 만일 그가 와이어 공연에만 집중했다면 그의 경험과 기술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그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일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몸의 기능과 실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지 않는 심리 상태를 왈렌다 효과라고 이름 지었다. 왈렌다가 공연의 성공 여부에 연연하지 않고 평소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자체에만 집중했다면 그는 분명 또 한 번의 완벽한 공연을 펼쳤을 것이다.

 

에디슨의 말 천재는 99%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마윈은 이것에 반대한다.

성실과 열심만으로 성공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성공은 귀차니즘에서 비롯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게이츠 그는 프로그래머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고 학교는 중퇴를 했다. 그는 복잡한 도스명령을 외우는 것이 귀찮아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 ‘이게 뭐더라? 잊어버렸네. 아 외우기 귀찮아.’ 그래서 전 세계의 컴퓨터가 똑같은 인터페이스를 갖게 되었고 빌 게이츠도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세계최고의 가치를 지닌 상표는 코카콜라이다. 그걸 만든 사람도 무척 게을렀다. 중국의 차 문화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브라질이 커피가 아무리 진한 향기를 지녔어도 그 사람에게는 다 귀찮았던 것이다. 그는 진한 시럽에 차가운 물을 더해 병에 넣고 팔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호나우두는 운동장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해서 상대편 골문 앞에 서 있다. 공이 자기에게 오면 한 번에 차 넣는다.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축구 선수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드리블이 놀랄 만큼 빠르다 라고 하지만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선수들은 90분 동안 뛰어다니고 그는 15분밖에 안 뛴다.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식음료기업은 맥도날드 이다. 그 사장도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프랑스 요리의 아름다움이나 중국 요리의 기교 따위는 배우기가 귀찮아서 그는 빵 사이에 간단하게 소고기를 집어넣고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맥도날드 로고를 볼 수 있다.

 

피자헛의 사장은 파이의 내용물을 안에 다 넣기 귀찮아서 위에 뿌려버리고 지금은 피자라는 이름으로 파이보다 10배는 더 비싸게 팔고 있다.

 

각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고력과 학습이 현실에 적용가능한 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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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을 주장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인데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비판의 철학자’, ‘비판의 지성’, ‘공론장의 사회학자가 되었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로서 공론장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현존하는 인물 중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사회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힙니다. 또한 그는 여러 사회적 안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매체에 꾸준히 기고하는 실천하는 지성이기도 합니다.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비교적 부유한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는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언청이로 태어났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태어나면서 완벽하게 고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버마스는 14세에 당시 독일 청소년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히틀러 유겐트’(나치의 청소년 조직)에 들어갔는데, 언어장애로 인해 응급처치 반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당시 나치의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전쟁 후 나치 수용소에 대한 기록영화와 뉘른베르크 재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사회, 나치즘의 광폭성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이 재판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버마스는 엄청난 도덕적 파탄을 겪었음에도 평화로운 듯이 유지되는 독일 사회와 점차 관료제화 되어가는 정치과정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과 공포에 빠집니다. 악의 주범들은 전쟁과 재판을 통해 사라졌지만, 그에 동참했던 자신들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사람들, 나치 독일의 전쟁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치시절에 나치에 대한 비판을 한 줄도 쓰지 않았던 세계적인 철학자 하이데거의 철학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하버마스는 현실과 별 관련이 없는 철학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비판적 이성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찾습니다.

하버마스는 철학과 사회학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린 비판이론을 계승한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철학과 역사, 사회와 정치, 경제 등 모든 권위와 지식을 비판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기존의 철학적 진리와 인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대상을 비판했으며 이러한 자세는 그의 철학의 밑바탕이 됩니다.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최진기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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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화는 과정이다. 미셸 마이에즈(Michelle Maiese)가 비인간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마이에즈의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이에즈는 비인간화를 적은 인간보다 못한 존재이므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가치가 없다고 보이게끔 해서 적을 악마로 만드는 심리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비인간화는 대개 적의 이미지를 만드는데서 시작한다. 편을 가르고 신뢰를 잃고 점점 더 분노하는 동안 우리는 적에 대한 인상을 굳힐 뿐만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소통하며 일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마저 잃기 시작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우리와 다른 편에 선 사람을 도덕적으로 열등하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판단하고 나면 그 갈등은 선과 악의 구도를 띠기 시작한다. 마이에즈는 당파들이 이런 식으로 갈등을 조작하고 나면 각 당파는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자기 당파가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패배하게 된다고 믿게 되면서 제로섬 사고방식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대편을 처벌하거나 파괴하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호전적 성향이 강한 리더십이 권력을 장악하기도 한다.

비인간화는 수많은 폭력, 인권침해, 전쟁 범죄, 집단 학살 행위를 부추긴다. 또한 노예제도, 고문, 인신매매를 정당화한다.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성과 인간 정신침해를 용납하고, 나아가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은 종교적 핵심교리 위반을 용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날까? 마이에즈의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인간의 기본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살인, 강간, 고문 같은 범죄는 잘못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비인간화에 성공하면 도덕적 배제 moral exclusion 가 발생한다. 성별, 이념, 피부색, 민족, 종교, 연령과 같은 정체성을 기준으로 표적이 된 집단은 인간이하나 범죄자, 악마로 묘사된다. 결국 표적인 된 집단은 인간의 도덕률에 따라 당연히 보호받는 범주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도덕적 배제이며 비인간화가 그 핵심이다.

비인간화는 항상 언어에서 시작하며 그 다음 대개 이미지가 따라온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곳곳에서 이를 발견하게 된다.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동안 유대인을 운터멘셴 untermenschen 즉 인간이하라고 칭했다. 나치는 유대인을 쥐라고 불렀고 군용 홍보물로부터 동화책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서에 병을 옳기는 설치류로 묘사했다. 르완다 대학살 당시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토착 민족을 가리켜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일은 흔하다. 세르비아인은 보스니아인을 외계인이라고 불렀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노예 소유주는 노예를 인간 이하 취급한다.

각종 잔혹행위에 참여했거나 이를 방관한 모든 시민이 난폭한 사이코패스였다고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진실이 아니며 핵심에서 벗어난 해석이다. 핵심은 바로 우리 모두 은밀하고 천천히 자행되는 비인간화에 희생되기 쉬우므로 이를 알아차리고 막을 책임을 진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브레네 브라운 지음/이은경 옮김) 중에서 -

 

 

-감정을 공유할 때 행복을 느낀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Emile Durheim 1912년에 발표한 저서 <종교 생활의 원초적 행태>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에서 집합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 이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뒤르켐은 종교의식에서 목격한 마법 같은 순간을 조사하고 있었다. 뒤르켐은 집단 열광이 유대감과 공통된 감정을 느끼는 체험이자,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집단에 속하게 됐을 때 발생하는 성스러운 느낌’ sensation of scaredness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뒤르켐은 집단 열광을 체험할 때 우리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서 집단으로 바뀐다고 제시했다.

 

어떤 연구에서는 집단 회합’collective assembly 체험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는 수단을 개발하고 입증했다. 이 같은 체험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키우며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고독감을 낮추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이 연구는 논문에서 결과는 집단 회합이 그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스포츠 경기, 콘서트, 연극 등을 보면서 세상살이를 잠시 잊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가정과 일치했다. 집단회합은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인가와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을 느낄 기회다. 기쁨, 사회적 유대감, 의미, 나아가 평화를 느낄 기회이기도 하다. 집단 회합은 오랫동안 인간 체험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며 이 연구는 집단 회합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중요한 이점을 수량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생활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정치 및 이념 문화로 눈을 돌리면 지금 우리와 함께 같은 편에 서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불가분의 유대감을 맺고 있거나 뿌리 깊은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상대를 증오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유대감이 아니다. ‘아군 아니면 적군이라는 편가르기일 뿐이다.

누군가와 공유하는 공감대가 단지 같은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뿐이라면 이때 경험하는 친밀감은 대개 강렬하고 즉시 만족감을 얻으며 격분과 고통을 손쉽게 배출하는 방법이다. 열기를 내뿜고 빠르게 타며 더러워진 감정을 남기는 연료다.

무리에 숨어 안전을 찾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는 아무 효과가 없다. 정치적 또는 사회적 신념과 이념이 같은 은신처에 모여 있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 안에서 혼자다. 심지어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한다. 은신처 동료들과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가는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에 불안에 떨게 된다.

반대와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집단이나 공동체는 불가분의 유대감을 느끼는 그 어떤 체험도 경험할 수 없다.

 

집단 회합은 사회 경험을 공유하려는 원초적인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 같은 갈망이 진정한 유대감 외에 목적으로 이용되고 조작될지 유념해야 한다. 집단 회합은 정신적 충격에 빠진 공동체 상처 치유에 첫걸음이 될 수도 있지만 같은 공동체에 정신적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함께 모여 진정한 기쁨, 희망, 고통을 공유할 때 바람직한 인간 본성을 가리는 만연한 냉소주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브레네 브라운 지음/이은경 옮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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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유대인 600만을 학살했습니다. 독일은 망하고 히틀러는 자살을 합니다. 그 후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살인을 직접 시행한 사람이 아이히만입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대부분의 피고들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던 것과 달리 아이히만은 죄책감을 못 느끼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자신은 국가의 국가의 법에 맞추어 히틀러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했을 뿐. 명령을 받지 않고 그런 일을 했다면 분명 양심의 가책을 받았겠지만 나는 그저 법을 준수했을 뿐이니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으며 죄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개인적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명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동기도 없었고 사실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는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두 아이의 따뜻한 아빠이고 책임감있는 아버지 였습니다.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는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지켜본 한나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아이히만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의 죄는 사유 불능성’, 그중에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성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합니다.

한나아렌트는 한마디로 개인의 판단능력 없음으로 인한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최진기 지음) 중에서-

 

질문) 우리 삶에 침투한 악의 평범성의 예를 들어보시오. 우리 곁에서 을 느낄 때, 외면하며 평범하게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윤리적 대안을 마련해보시오.



노자의 무위자연

 

 

노자철학의 핵심은 도()입니다. 그가 말하는 는 천지만물의 근원입니다. ‘천지만물의 근원이란 말이 어렵다면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이란 아무런 꾸밈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도가에서는 인간의 의지나 욕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겼으며,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자연을 강조했을까요? 노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전란에 휩싸인 시대,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전쟁에 끌려 나가기 일쑤이며 국가의 존재도 점점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그는 일시적이지 않은 영원한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해가지면 저녁이 되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에 이어 겨울이 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먹으면 볼일을 봐 배출하죠. 그는 자연의 저절로 그러한모습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흐름, 원리 같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뭉뚱그려 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자연의 반대는 인위입니다. 자연의 반대말을 보통 인위라고 생각하는데, 이 공식을 만든 것이 바로 노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에 있을 때는 꾸밈이 없습니다. 여자 분이라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아침에 감지 않은 머리는 그냥 고무줄로 질끈 동여매고 수면바지를 입고 소파에 누워 책을 봅니다. 꾸밈없고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소개팅을 나가게 된다면 화장을 하고 머리는 드라이를 하고 옷은 차려입고 말투도 더 신경을 씁니다. 좀 거친 예이긴 하지만, 집에 있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그 상태가 바로 자연이고 소개팅을 나갔을 때의 상태가 바로 인위입니다.

유전자 변이도 인위의 예가 됩니다. 또한 노자는 사회제도 등도 인위의 산물로 봅니다.

 

그렇다면 노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가사상에서 인위와 자연과의 관계는 무위자연이라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즉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태,’ ‘아무런 꾸밈없는 상태’, ‘저절로 그러함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데 이것이 노자가 추구하는 도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노자에게 인위의 상태는 자연의 상태에 위배되고 거스르는 것으로 옳지 못한 상태, 즉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노자에게 자연은 인간과 땅, 하늘과 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최고의 경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자연을 인위적 상태의 반대개념으로 해석했을까요?

그는 당시 사회혼란의 원인을 그릇된 인식과 가치관,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제도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이 자연의 상태인 무위자연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연의 상태는 자연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렁이는 흙을 좋아하고, 소는 풀을 좋아하고, 사자는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소에게 고기를 먹인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거슬리는 것이므로 광우병 같은 것이 발생하여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최진기, <동양고전의 바다에 빠져라>중에서-

 

질문)노자철학의 입장에서 현대의 생명공학에서 다루는 유전자 변이, 유전자 편집 출산을 비판해보시오. 노자의 입장에 반대한다면 현대의 생명공학에 대한 반론을 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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