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을 주장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인데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비판의 철학자’, ‘비판의 지성’, ‘공론장의 사회학자가 되었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로서 공론장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현존하는 인물 중 앤서니 기든스와 함께 사회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힙니다. 또한 그는 여러 사회적 안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매체에 꾸준히 기고하는 실천하는 지성이기도 합니다.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비교적 부유한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는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언청이로 태어났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태어나면서 완벽하게 고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버마스는 14세에 당시 독일 청소년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히틀러 유겐트’(나치의 청소년 조직)에 들어갔는데, 언어장애로 인해 응급처치 반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당시 나치의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전쟁 후 나치 수용소에 대한 기록영화와 뉘른베르크 재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사회, 나치즘의 광폭성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이 재판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버마스는 엄청난 도덕적 파탄을 겪었음에도 평화로운 듯이 유지되는 독일 사회와 점차 관료제화 되어가는 정치과정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과 공포에 빠집니다. 악의 주범들은 전쟁과 재판을 통해 사라졌지만, 그에 동참했던 자신들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사람들, 나치 독일의 전쟁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치시절에 나치에 대한 비판을 한 줄도 쓰지 않았던 세계적인 철학자 하이데거의 철학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하버마스는 현실과 별 관련이 없는 철학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비판적 이성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찾습니다.

하버마스는 철학과 사회학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린 비판이론을 계승한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철학과 역사, 사회와 정치, 경제 등 모든 권위와 지식을 비판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기존의 철학적 진리와 인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대상을 비판했으며 이러한 자세는 그의 철학의 밑바탕이 됩니다.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최진기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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