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현실, 이중 잣대가 문제다

 

 

이중 잣대의 현실을 보다

성에 대해서 남자에게는 관대하고 여자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시대가 바뀌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요즘엔 남녀 간에 새로운 이중 잣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나이 많은 여자 연예인들은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한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예능에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자 A급보다 남자 B급을 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즉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주로 여자인데 여성시청자들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 시청자들도 예쁜 여자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나이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고, 똑똑하고, 예쁘지 않은 여자가 망가지고 몸 개그를 하면 나댄다고, 상스럽다고 욕하고, 남성 출연자가 하면 '와 제대로 한다'고 칭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그걸 아예 토크나 코미디 소재로 써먹으면서 치고 나가는 반면, 여자는 뭘 해도 남자보다 훨씬 욕을 많이 먹기 때문에 나쁜 경험이 쌓이면서 위축된다는 것이다. 남성 출연자가 세수 못하고 부스스한 머리로 나오면 귀엽다고 하지만 여성 출연자가 화장 안하면 못생겼다고, 또 화장을 하고 나오면 작위적이라고 비난한단다.  즉 같은 B급의 남자, B급의 여자 연예인이라도 다른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진정성을 부여하고 여자는 그 가치를 폄하 한다는 것이다. 이글을 읽고 남 얘기가 아니다. 살아있는 나의 얘기임을 느끼며 비애을 느낀다. 여성들, 특히 나이가 과년한 싱글여성들은 온갖 가치폄하와 선입견과 편견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드라마 <애정의 조건>, 이중 잣대의 현실을 꼬집다

그런데 이런 남녀 간의 이중 잣대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 적이 옛날에도 있었다. <애정의 조건>이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당시 30%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많은 화제가 된 드라마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채시라이고, 채시라 동생으로 나오는 것이 한가인이었다. 이 두 여성의 삶이 기구해지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이야기인 즉은, 채시라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그런데 남편의 외도에 충격을 느낀 이 채시라가 옛 남자 친구와 밤을 보낸다.  이게 발각되어서 남편으로부터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한 채 이혼을 당하는 데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을 한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바람피운 사실에 기겁을 하면서 이 여자를 다시 내치려하고 결국 이 여자에게 풍파가 지속된다. 시어머니는 남자의 외도는 가당해도 여자의 맛 바람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데 같은 여자가 더 무섭다. 동생으로 나온 한가인도 어릴 적에 동거하고 유산한 경험이 있는 여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이 여자의 순수하고 청순한 모습에 반해서 결혼하자고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었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의 비밀이 유지되지 못하고 드러나면서 이 여자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날을 보내게 된다.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을까. 불행으로 치닫고 말았을까. 결말을 어떻게 그리냐는 것도 그때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그때 여성시청자들이 많이 분노했다고 한다. 작가가 그 세태를 반영하여 드라마는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드라마는 해피 엔딩이었으나 아직까지 현실은 여성에게 너무 무서운 잣대가 가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조직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중 잣대의 현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사회에서도 이 이중 잣대의 피해를 보는 여성들이 많다.

싱글녀들은 직장생활의 경험이 모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 핀 남자 상사는 안 쫓겨나도 스캔들이 난 여자부하 직원은 쫓겨나는 것은 다반사로 듣는 이야기다. 남자 여자가 상하구조 속에 있으면 말하나 마나 여자가 피해를 본다.

그러나 남녀가 비록 대등한 학벌과 실력을 갖추었더라도, 여성을 더 가치 폄하하고, 여성이 스캔들이 있을 경우는 조직사회에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조직사회에서도 남자의 바람 핀 것에 너무 관대하다.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더 관대하다.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실력의 문제에 있어서도 여성은 똑같은 학벌과 조건에도 가치 폄하되기 일쑤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하나 아직은 아닌 것을 피부로 느낀다. 여성혐오현상으로 지나가는 여성을 묻지마 살인하고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하느니 이런 소리가 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여성으로서 남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도 가정과 사회에서 조직에서 남성선호로 여성들은 시달리고 조그만 스캔들에도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고, 무조건 가치 폄하 되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남성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남성들이여, 여성혐오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이 되어 달라, 외치고 싶다.

 

 

사고의 전환, 여성은 남성해방을 외치고, 남성은 여성해방을 외치자

남녀 간에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외치지 말고 여성은 남성을 더욱 이해하고 남성은 여성을 더욱 이해하여 서로 남성은 여성해방을 위해, 여성은 남성해방을 위해, 노력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차별, 이중 잣대로 피해보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을까.

남성 중에도 페미니스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권위적인 남성들은 아직도 가정에서 조직에서 여성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을 본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일까.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여성들,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 않길 바란다. 여성성까지 버리면서 살아남기 경쟁을 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의 위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네들은 우리들의 언니이며 누나이며 여동생이다. 그리고 같은 여성들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폭 넓은 인간이해로 이젠 이중 잣대와 무조건적으로 가해지는 가치 폄하로 시달리는 여성, 또 남성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위대함, 로봇다리 세진이 엄마 이야기

 

 

엄마의 위대함, 가슴으로 낳은 아들도 엄격하게 교육.

로봇다리 세진이 이야기를 세바시 동영상이나 TV등을 통해서 다 보았을 것이다. 세진이도 훌륭하지만 나는 세진이 엄마에게 가슴이 더 뭉클해져 옴을 느꼈다.

땡큐라는 TV프로에서 세진이가 자신의 엄마를 소개했다. 자식을 낳는 방법은 배가 아파서 낳는 방법, 제왕절개를 해서 낳는 방법, 가슴으로 낳는 방법,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세진이 엄마는 세진이가 있는 시설에 자원봉사 갔다가 그 아이를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파 입양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슴이 아파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세진이 엄마는 그 아이를 의사선생님께 데리고 갔는데, "얘는 평생 못 걷습니다."  그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진이는 두 다리 모두가 불구이다.  발도 없고 발가락도 없다.  더군다나 한쪽 발은 짧기 까지 하다.  그런데 세진이 엄마는 못 걷는다는 말에 더 오기가 생겨 이 아이를 반듯이 걷게 하리라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피눈물 나는 재활운동을 했다고 한다.  쇠망치로 된 로봇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상에 보니까 그 엄마는 자꾸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일어나, 일어나' 하면서 얼마나 혹독하게 시키는지, 그 아이는 울면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이제 세진이는 잘 넘어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진이가 엄마에게 교훈을 얻었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자꾸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 인생도 마찬가지야"

그런 세진이 어떻게 되었을까. 3870m 록키산맥을 로봇다리로 오르고, 10킬로 마라톤 완주를 로봇다리로 해냈다. 두 다리 멀쩡한 일반 사람도 못하는 일들을 해낸 것이다.

 

보통 적자는 엄격하게 훈련시켜도 서자는 엄격하게 훈련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이 배가 아파 낳은 아이가 아니면 불쌍해서 동정해서 더 엄격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이 엄마의 위대함은 동정보다는, 연민보다는 이 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장애인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세진이 에게 했던 말, "너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자꾸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자꾸 일어나는 것, 이것이 세진이를 강하게 했고 멀쩡한 사람도 못할 일을 로봇다리로 해내게 한 것이다.

이 엄마의 교육에 박수를 보낸다. 품에 자식처럼 애지중지 오냐오냐 기르는 것, 불쌍함에 마냥 의존적으로 키우는 것, 이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닐 것이다. 세진이 엄마에게 배워야 한다.

 

 

엄마의 위대함, 용서의 지혜로 적을 내 편 만들기.

그런데 세진이에게 눈물 나는 일화가 있다. 세진이에게 커다란 시련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 형들이 얘는 로봇다리라고 망치로 다리를 때려서 세진이가 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질질 다리를 끌고 왔던 일이 일어났다. 이때 그 엄마가 한 행동이 놀랍다.

이 세진이 엄마가 이 가해한 아이들을 죽여 살려 흥분해서, 그 아이들을 찾으러 갔는데, 막상 그 아이들을 보니까 평온해 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니네 축구하느라 힘들었지, 아줌마가 햄버거 사줄게 같이 갈래," 그렇게 해서 햄버거에다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니네 아까 이 아이 때리는 거 봤다"  그러니까 어떤 아이는 울고, 또 어떤 아이는 "얘 로봇다리라서 때려도 안 아파요, 안 아파요" 하면서 뻔뻔스럽게 얘기를 한다.

그 때 세진이 엄마 물병을 딱 들고 그 아이들 앞에 확 하고 갔다대면서, 그렇게 놀래 킨 다음에 "그래 아프진 않았을거야 그런데 지금 너희들이 놀란 것처럼 놀랐을 거야" 이렇게 말하고 부드럽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 아이 엄마란다. 부탁이 있는데 그 아이에게 미안하단 말을 해주겠니."

그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미안하다는 말을 물론이거니와 세진이 초등학교 내내 세진이 보디가드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세진이 엄마의 위대함, 용서의 지혜에 있다. 자기 자식이 피를 흘리고 왔을 때 흥분하고 분노하지 않을 엄마가 없을 것이다. 특히 세진이는 어떤 아이인가. 장애인을 괴롭혔다는 것에 더욱더 분개할 일이다. 그러나 그 엄마 평온을 되찾으며 그 가해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까지 사준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로 하여금 조용히 깨닫게 한다. 삶의 지혜로. 그리고 사과도 받아내고. 그 가해한 아이들은 절대 세진이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도리어 세진이의 편에 서서 학교생활 내내 세진이의 보디가드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엄마의 지혜로운 방법이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았다. 내 자식을 괴롭혔다고 죽여 살려 하면, 세진이는 계속 괴롭힘을 받았을지 누가 알랴. 용서가 답이다. 용서에 삶의 지혜를 얹어 적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세진이는 장애인이라도 놀림 받지 않고 외롭지 않았다.

엄마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승자의 뇌>, 진정한 승자의 정신

 

 

누구나 승자가 되고 싶어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해야 승자로 살 수 있는 걸까. 혹자는 유전자에 의해 승자 혹은 패자가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승자효과 winn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바로 <승자의 뇌>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동물실험을 통해서 한 번 싸움에서 이긴 경험이 다음 싸움에서 이길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승자효과이다. 한번 승리가 다음번의 승리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한번 승리한 경험은 뇌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분출하는데, 이 맛을 본 동물이 다음 번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둘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다음 번 대결에서 이 테스토스테론이 보다 더 많이 분출된다. 그럼으로 인해서 그 동물은 덜 불안해지고 더 공격적으로 바뀌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임계점도 더 높아진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승리를 거두는 동물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바로 이 승리의 쾌감을 뇌가 기억하고 뇌가 다음번 싸움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한번 이긴 경험을 맛본 사람은 다음번 경쟁에서도 이긴다는 논리이다.

 

승리감은 수명과도 관련이 있다

책에서 보면 이런 예가 있다.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자로 지명된 성공한 배우들을 대상으로 해서 수명을 분석한 결과, 아카데미상 수상자들이 후보로만 지명만 되고 그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4년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노벨 수상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노벨상 수장자 들이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결국 그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1-2년을 더 오래 살았다는 보도가 있다. 저자는 이런 결과가 왜 나왔는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경험이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강화하기 때문에 이것이 스트레스의 해로운 효과를 차단해서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승리의 경험은 승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한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통제감은 승자를 스트레스로부터 막아주며 그가 보다 나은 성공을 거두고 보다 오래 살며 또 보다 행복해지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승리의 경험은 우리에게 유익한다. 수명도 연장시켜준다.

 

끊임없는 승리는 부정적 결과를 만든다

부정적인 승리도취, 도박, 권력, 섹스를 생각해 보자. 승리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인다고 했다. 이 수치가 높아지면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테스토스테론은 도파민,  즉 도박이나 모험의 전율이든 혹은 섹스의 전율이든 간에 전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이 도파민 수치를 높여주고 이 많은 양의 도파민이 전율을 좇는 마음을 충돌질 한다. 그래서 억제할 수 없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나아간다. 일정한 양의 도파민은 힘을 북돋우고 동기부여를 하며 보상과 인정에 따르는 행복감을 주지만, 도파민의 양이 통제되지 못할 때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끊임없는 섹스에 취하고 도박꾼들이 도박을 끊지 못하고 계속 도박을 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 일 것이다.

 

진정한 승자는

저자는 진정한 승자는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권력에 심취하면 권력 맛을 보면 개가 되기 쉽다. 저자는 이것을 경계하고 있다.

진정한 승자는 권력의 편익(예를 들면 똑똑함, 창조성, 목표 집중성 등)을 즐기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자원을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승자는 삶을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며, 이 통제감이 승자를 스트레스로부터 막아주며 부정적인 영향에서 막아주며, 보다 더 성공을 거두고 오래 살며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승자는 자신의 자아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나운 개라는 사실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라는 자아를 사회적인 원칙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목줄에 단단히 채워두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즉, 진정한 승자는 바로 자신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런 리더, 이런 정신을 가진 정치가가 필요하다. 리더는 권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승리의 쾌감이, 권력의 맛이 자신의 자아를 개가 되지 않도록 늘 통제하고, 사회의 원칙을 늘 수호하려고 하는 리더,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돈과 섹스문제에 얽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도덕을 이야기하고, 보편타당한 가치를 이야기 하고, 상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뇌를 연구했다. 그는 뇌를 연구하면서 승리의 맛도 권력의 맛도 통제가 됨을, 통제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승리는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러나 우리가 통제력을 잃으면, 그 승리의 쾌감은 우리를 언제나 짐승으로 만들 수 있음을 늘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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