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윤리, 반 난민정서, 반 이민정책을 생각해보며

 

 

진정한 강자는 약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

강자의 윤리, 이 단어를 떠올리면 어렸을 적 추억과 오버랩 되는 것이 있다.

나는 4남매의 막내이다. 그런데 어렸을 적 위로 오빠 둘이 있어 언니보다는 오빠들이랑 더 잘 놀았다. 큰오빠는 나보다 5살 위인데 키가 크고 힘이 셌다. 작은 오빠는 나보다 2살 위인데 키가 작고 몸집이 작았다. 그런데 이들이 권투시합을 하고 잘 놀았다. 심판은 막내인 나였다. 사각 링은 사각 누빈 솜이불이었다. 싸우다 이 솜이불 밖으로 벗어나는 자가 지는 거였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내가 보기에도 시합이 안될 만큼 키 차이가 컸다. 그래서 나는 큰오빠 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어린나이에도 불공평한 거가 보였는지 큰오빠가 강자처럼 보이고 작은 오빠가 약자처럼 보였다. 본능처럼 정의감이 있었는지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큰오빠는 무릎을 반쯤 꿇었다. 그러니까 키가 비슷해졌다. 나는 시합시작을 알리고 시합도 아닌 시합이 시작되었다. 서로 웃으면서 때리고 맞고 큰오빠는 일방적으로 맞는데, 맞으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그 때 처음 본 것 같다. 어린나이에도 큰오빠가 져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해서 작은 오빠가 이기기도 하고, 큰오빠가 이기기도 하고, 그러다가 승패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 모두가 즐거웠다. 헤피 엔딩이었다.

나는 강자의 윤리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약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거, 그러기 위해서 무릎을 살짝 꿇어주는 것, 약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강자들은 약자들의 약함을 너희들의 무지함 때문이다, 너희들의 게으름 때문이다라고 비난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그리고 맞아주기는커녕, 져주기는커녕 흠씬 패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감히 나에게 덤볐다고 때리고 아니면 훈련시킨다고 그래야 맷집이 세져 하면서 때려 된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 성한 사람 하나 없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 괴물이지 사람이 아니다. 인간성이 파괴된 괴물이다.

 

 

진정한 강자는 남을 기쁘게 하는 넉넉한 사람

진정한 강자는 약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업신여기거나 무시해서도 절대 안 된다. 이 세상의 강자와 약자는 자로 재듯이 구분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기를 강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교만이 될 수 있다.

어느 여름날 있었던 일이다. 길을 지나가는 데 깡마른 할머니가 검은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잡수시고 계셨다. 더운 여름에 위생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음식 내용물도 뭔지 모르겠고 동냥해서 얻으셨나 저러다 배탈 나실까 걱정이 되어 지갑을 열었다. 천 원 짜리 몇 장을 꺼내다가 아예 만 원 한 장을 꺼내드리면서 할머니 점심 사드세요, 이것먹지마세요, 그랬더니 제 손이 무안하게 할머니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면서 저 동냥 안받아요, 없이 살아도 남의 돈 안받아요, 하시는 거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폐휴지 주워서 그 돈으로 지나가는 귀여운 아이에게 과자사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도 기뻐하며 넙죽 절하며 과자를 받아갔다. 할머니 존경스러웠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사람도 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이 진정 강자다.

어떤 사람이 한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트럭 뒤에서 한 숨 자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놓고 비하하는 내용을 실었다. '자기 자리를 아는 사람' 이라느니, 흙수저 라느니 하면서 비웃음거리로 삼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같이 동의하는 댓글을 달아 올렸다는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 인격이 의심스럽다. 지구를 떠나야 될 사람들. 이 세상에 직업에 귀천도 없고 하찮은 사람도 없다.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나보다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넉넉한 사람이고 강자다. 폐휴지 줍는 그 할머니 이미 넉넉한 사람이고 강자중의 강자다.

돈이 많다고 권력이 많다고 명예가 있다고 강자인가.

그 할머니 폐휴지 주워서 몇 천 원 못 버셔도 그 돈으로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냥 동냥처럼 베푸는 것은 받으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반 난민 정서, 반 이민 정책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져 가고, 정말 삭막해져가는 현실을 느낀다. 독일에서는 증오범죄가 하루 10건씩, 반 난민정서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가진 자들의 배려, 가진 자들의 윤리성이 다시 거론되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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