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다, 트럼프의 위압정치, 힘에 의한 평화에 대한 생각

 

 

강대국들의 힘의 정치

김기훈 위비경영연구소장이 조선일보에 미국, 중국, 일본의 정치에 대한 성향을 잘 정리된 단어들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위압정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포정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파격정치라는 말로 요약했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을 막고 전 세계 기업인들을 힘으로 눌러 미국물건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외치며 위압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주가가 하락할 때 시장 논리에 따라 공매도를 해 이익을 본 증권사 사장을 주가 급락 주범으로 지목해 감옥에 집어넣고 있는 공포정치를 하고있다. 경제를 살기기 위해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는 좀 다르다. 협박하거나 감옥에 넣지는 않는다. 그는 이것을 파격정치라 불렀다. 아베는 야근금지라든가, 노인노동연령을 연장하거나 이런식으로 경제에 화력을 불어넣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국방비 예산을 61조원이나 늘리기로 표명하고,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자신의 안보 기조를 구체화하고 나섰다. 본격적으로 위압정치, 힘의 정치를 하겠다고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이 자국이익정책을 발표하고 힘에 의한 정치, 위압정치를 하기 시작하니 중국도 자국이익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들이 잠간 효력은 보고 있다하나 그것이 오래갈까.

잠간 기업인들이 두려워 말을 듣는다 하나 역사적으로 공포정치, 힘을 사용한 사람들은 힘에 의해 망한 사실을 볼 수 있다. '팍스 로마나' 라는 말을 아실 것이다. 로마의 힘에 의한 통치, 힘에 의한 평화를 이렇게 불렀다. 그러나 로마 당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대국도 허물어졌다. 힘에 의한 통치, 힘에 의한 정치는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용암이 잠잠하다 분출하듯이 언젠가는 그 긴장과 갈등이 탈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렇게 나오면 약소국들은 힘에 눌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그 속에 용암은 어떤 식으로든 터져 나올지 모른다.

 

강대국들의 정의의 개념이 다시 논의되어져야 한다.  힘에 의해 정의를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의인가.

 

정의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은 많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는 상대적인 정의이고 정의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다.

이제 정의의 개념에 관계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 관계유지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관계는 관대함과 따뜻함 더 나아가 사랑으로 존속되는 것이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무슨 사랑이냐, 그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고 현실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이런 개념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거랑 이런 개념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다.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출 때, 관대한 정의가 이루어진다. 예로, 부모가 권위적이라서 공포, 위압으로 교육시켰다고 해보자. 그 아이는 언제가 그 억눌린 분노를 터뜨리고 삐딱하게 되기 쉽다.

정치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위압과 공포는 약자를 긴장시키고, 억눌리게 하고, 결국엔 분노로 표출된다. 아예 관대함과 따뜻함으로 동등한 인격으로 보고 타협과 협상을 해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 강대국의 리더에겐 그것을 기대해 볼 수 없다. 그들은 온통 외곬으로 묶인 사람 같다. 지금 미국사회에 도는 반 트럼프 감정 무시하고 지나갈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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