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얽힌 나만의 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는 못 베깁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사명은 옛날부터 남편, 자식 밥 먹이는 거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자식 4명을 기르시면서 밥 먹이는데 목숨 거셨습니다. 도시락은 하루에 열 개씩 싸고 밥 안 먹는다고 떼쓰면 달래면서 먹이고, 그래도 반찬투정하면 때리기까지 하시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돈까지 주시면서 밥 먹으라고 사정하셨습니다. 아니 떠먹여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잊고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땐 같은 여자로서 그런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같은 여자지만 다른 시대의 가치관과 다른 시대의 흐름을 타고 사는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가치관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 어머니 뿐 만 아니라 나의 어머니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엄마에겐 왜 그렇게 밥이 중요할까. 여자의 사명은 단지 밥으로 대표되는 가사노동, 돌봄뿐인가. 여성의 자아실현, 즉 여자로서 조직사회에서 리더로서 서기 위해서는 어떤 땐 돌봄과 배려의 정신이 거침돌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우리네 엄마들은 왜 여자는 밥을 차려주고 안 차려주고, 밥을 해주고 안 해주고, 밥을 먹이고 안 먹이고, 이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까.

집안에서도 나는 오빠가 둘 있지만 나는 같은 여자로서 시누이들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호통을 치면서 내 아들이 불쌍하다고. 며느리가 밥도 안 해준다고... 판단의 근거가 밥입니다.

나는 박사까지 공부하고 결혼해서도 내 자아가 실현되길 바랐는데, 엄마의 신신당부는, 여자가 박사까지 공부해도 결혼해서는 남편 밥은 꼭 차려줘야 한다. 시어머니한테 잘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충고가 몸에 밴 저는 조직사회에서 당하기에 딱 좋은 여자이고 남성들의 밥이 되기에 딱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의 그런 사고방식들이 젊은 여성들을 얼마나 눌리고 기죽이고 여성으로서 리더가 되는데 큰 거침돌이 되는지를,

저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조직사회에서 여성들은 항상 남성리더들의 밥이나 챙기는, 비유적 표현이지만, 그런 일들밖에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아무 이유 없이 쫓겨나면, “저 여자가 순종하지 않아서, 나대서, 드세서, 뭐 잘났다고 고개 숙이고 다녀야지,”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 우리네 여성들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특히 겸손과 순종을 미덕으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그런 일들은 더 자주 발생합니다. 여성 권사님들의 가치관은 항상 여자들은 남자 목사한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 스텝이나 여자 전도사, 여자 목사 아니 그 사모까지도.

목사와 사모가 부부싸움을 해서 폭력이 일어나면 당연히 여자가 더 힘센 남자한테 당하지요. 그래도 사모가 못 돼서, 라며 온갖 사모 욕을 합니다.

힘센 남자에게 당하는 우리네 여성,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나요. 폭력을 당하고도 고작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네 여성들은 같은 여성인데도 왜 남성한테만 굽을까요. 하나님은 왜 그렇게 여성을 창조하셨을까요. 내가 우리 어머니 나이가 되면 이해가 될까요.

이젠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밥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다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밥을 대신하는 기능이 현대사회에선 무수히 발전했습니다. 옛날 우리 여성들은 사회진출을 할 수 없었어요. 집안에서 밥을 챙기는 것이 사명이었고 그게 경제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능력과 재능이 있음에도 그 밥 때문에 그것을 썩혀가며 참고 살고 순종하며 살아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이젠 여성들이 경제적인 능력을 사회에서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같은 여성들이 서로 도와야 그런 여성들이 좀 더 당당하게 좀 더 자유롭게 사회에서 설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고 일터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그러다 과로사로 쓰러져 죽은 여성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여, 아니 여성들이여, 여성의 자리를 가정에서만 국한시켜 제발 으로 여성을 판단하지 말고, 이 사회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의 여성의 자리를 넓혀 가는데 동참해 주는 여성이 되길 바랍니다. 여성의 자리를 더 키워나가도록 여성이 여성을 돕는 이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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