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는 방법, 셀프디스

 

 

관계와 우정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관계라는 말에 익숙할 것입니다. 관계와 공감이라는 말에 수긍하지만 그러나 우정이라는 말에는 왠지 낯설음을 느낍니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이미 고리타분한 언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런지요. 우정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맺는 관계가 더 이 시대에 맞는 세련된 언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SNS로 자신을 알려 관계망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려 그물망처럼 얻은 관계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지언정, 여기에는 정이라는 것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때 느끼는 정. 그 정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인간관계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식 방법에서 더 강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친구를 어찌 대면 불식하는 인터넷 관계망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얻은 우정, 이젠 다시 이야기해야할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친구가 되는 방법, 셀프디스

랄프 왈도 에머슨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친구를 얻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먼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지만 말고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친구가 되려면 좀 모자란 듯 보여야 합니다. 이 말이 수긍이 가지 않으실 분들도 계실텐데, 좀 잘 나 보이고 가진 게 많아 보이고, 아는 게 많아보여야 사람들이 몰려들고 친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전 좀 반대의 생각입니다.

친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셀프디스하는 것입니다. 셀프디스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자신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요즘에 정치인들도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시키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방법으로 셀프디스를 행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실수나 결점을 인정하면 더욱 인간미를 느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나 약점이 약이 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경영에서도 이러한 셀프디스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진짜 있었던 일입니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라구니타스라는 맥주 회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이 맥주회사가 공장의 잘못으로 인기 제품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오는 맥주상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로서는 시즌 예약을 했던 고객들 항의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품질 면에서도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맥주 회사는 그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올 맥주상품의 맛이 별로일 것이라는 사실을 고객들에게 자진해서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맥주광고에 아예 라구니타스가 홀리데이 에일을 망침: brown Shugga 대체품 판매고 써놓고 우린들 기쁘겠습니까? 이번 시즌을 이렇게 망치는 게 민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린 참 별로입니다(we suck)"라는 사과문을 붙였습니다. 그 당시 소수만 알고 있던 라구니타스 맥주회사가 그 후 기사로 검색될 정도로 알려져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이고 진솔한 방법이 사람들을 끈 것입니다.(인터브랜드 지음, <의미부여의 기술>(서울:엔트리, 2014). p.101-102.)

 

셀프디스의 전형, 예수님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은 셀프디스의 전형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 이것 자체가 셀프디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셀프디스에 거부감을 갖는 분도 계실텐데, 자기 자랑만 하고 자기 지위 내세우고 자기의 우위를 조금이라도 내세운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김치 냄새가 나도 흉보지 않을 친구, 외로울 때 따뜻한 차 한 잔 하며 인생을 나누고 싶은 친구, 남의 말을 해도 서로 흉보지 않고 비밀이 샐까 두려워 안 해도 되는 친구, 서로 성공을 빌어주며 영원한 것을 꿈꾸도록 돕는 친구로는 남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니체는 향상심을 돕는 친구, 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경쟁관계에 있는 친구가 좋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실제로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들은 바로는 외롭게 죽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친구의 조건은 자기의 우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인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출신, 학벌, 인종, 사회에서의 지위, 부유함의 정도에 상관없이 일터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친구로 접근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친구가 되는 것, 예수님이 좋아하지 않으실까요. 저의 철없는 생각일까요?

제가 오늘 친구해드릴까요. 저랑 커피한잔 하실래요.’ 하고 한번 먼저 다가가세요. 예수님만큼이나 인생의 멋진 친구를 사귀게 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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