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얽힌 나만의 이야기

 

 

저는 산을 싫어합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산하면 많은 안좋은 기억들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몇 개월 동안 산을 내내 오른 적이 있습니다. 한 교회의 프로그램에 자연심방이란 것이 있었는데. 별 생각 없이 젊은 날 남자친구도 없는데 건강까지 없으면 억울하다, 무조건 그 생각으로 산에 오를 것을 다짐했습니다.

제가 산을 싫어하는 이유는 저는 산만 보면 어질어질합니다. 계단 숨 막힙니다. 자연을 심방하고 사랑하기엔 제게 자연이 너무 험난합니다.

저의 자연심방 전적은,

동네 뒷산에도 올라본 경험 없음, 친구와 안산오르다 계단에서 어질어질해서 쓰러지고 중간에 내려옴, 교회의 자연 심방 때 신발이 불편하단 이유로 올라가지 않고 개울가에서 발 담그다 놀다 옴.

이것이 저의 화려한 전적입니다.

아차, 또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쯤 다닐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극기 훈련시킨다고 저의 큰오빠, 작은 오빠, , 이렇게 셋을 데리고 산을 올라갔습니다. 큰언니는 왜 안 따라갔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버지와 우리 셋은 택시를 타고 산 근처까지 가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도 아차산 입니다. 당연히 저는 어린 초등학생이었고 남자 셋을 따라잡기가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의 버거움이 뒤처짐, 드디어 길을 잃음이란 비참함으로 되어버려 저는 울고불고 산을 헤맸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비참함에 무서움까지 있다는 것을 그때 더 느꼈던 것은 한 나이든 아저씨가 저의 손을 붙들고 데려다 주겠다 라고 하면서 저를 이끌고 가는 거였습니다. 저는 따라가다가 직감적으로 나쁜 생각이 들어 뿌리치고 울며불며 표지판을 보았는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저 혼자 어렵게 어렵게 산을 내려와 드디어 아버지를 상봉했는데 어린 마음에 가슴만 멍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을 제일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겁쟁이, 의지 박약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제가 산을 올랐습니다. 북한산 대성문, 인왕산 정상, 팔각정, 탕춘대까지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건강해서, 아닙니다. 제 의지가 강해서, 아닙니다. 제가 아직 젊어서,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산을 오래 탄 베테랑들이 나와 함께 하고, 이끌어주고,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혼자 였으면 금방 내려왔습니다. 조금 숨차면 중간에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을 올라가는 길이 참 지루합니다. 올려다보면 오르막길 숨이 막힙니다. 산의 경치를 훤히 내려다보고 즐길 수 있으려면 정상까지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올라야 하는 과정의 길은 볼 것도 많지 않고 힘들기만 한 지루한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험한 꼭대기까지 너 쉬지 않고 올라가야 해 그래야지 건강해져 그래야지 정상을 빨리 볼 수 있어, 조금이라도 빨리 보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야이래서 죽어라 올라갔으면 저는 쓰러져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쉬면서 물도 한잔 마시고, 가지고 온 떡도 먹고, 초콜릿도 먹고 그래서 또 힘을 내서 그 오르막길을 한계단 한계단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조금 더 빨라야 이긴다고 재촉하고 서두르면, 즉 쉼과 여유가 없으면 우리는 잃는 게 더 많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도 잃고 함께하는 사람도 잃고 건강도 잃을 것입니다.

셋째로 응원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조금 지치고 힘들어하면, 함께한 분들이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입니다. 힘을 내십시오하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었기 때문에 제가 정상까지 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힘들어하면 어떡해. 그것도 못해서 어떡할려고하고 빈정대시는 분이 계셨다면 오기로 올라갈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랬다면 그 다음 주에는 자연심방을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산을 잘 타시네요.. 이러다 히말라야 가시겠습니다.’ 이런 칭찬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을 인생길에 비유하기도 하는 데, 우리 인생길에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고, 쉼이 있고, 응원과 격려가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길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면, 인생의 산을 오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을 탈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 배려라는 가치가 새롭게 부상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약한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산을 오른 기억이 아직도 소름끼치게 저에게 기억되는 것은 왜 산을 오르는 것을 극기 훈련이라는 목적으로 밖에 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목적을 정상을 보는 것, 체력을 기르는 것, 거기에만 가치를 두었느냐는 것이죠. 그 어릴 적이 40년 전이었으니까. 그 시절 그 때의 가치관이 얼마나 여유가 없었는지, 특히 우리나라의 독재군사문화에서 비롯된 스파르타식 훈련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성공의 조건으로 여겼던 풍조가 한 어린 초등학생의 기억에 끔찍한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때에 왜 나의 가족이지만, 남성들은 왜 함께 한 약한 사람을 배려해주지 않았을까요.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실수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제 나이가 먹어 현실이 그와 같음을 알아버린 한 여성으로서의 아픈 경험 때문에 그 기억이 저의 가슴에 또 한 흔적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뒤쳐져도 손을 잡아주지 않고,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혼자 이겨 내야한다고 말하며, 심지어 길을 잃은 사람을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세상은 정말 무섭기까지 합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힘들고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좀 더 배려하고 기다려 준다면 약한 사람도 그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데, 무섭고 힘든 일 이겨내라고만 재촉하는 현실이 아직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고, 저같이 의지 박약아도 있고, 정신이 약한 사람도 있고, 육체가 약한 사람이 있고, 물질이 약한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자와 함께 해주고 재촉하지 않고 함께 쉬어 주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면 그런 약자도 튼튼해지고 정상까지 느리지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정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희열을 같이 느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요. 이렇게만 된다면 약육강식의 정글같은 무서운 세상이 정말아름다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저는 산에 오름을 통해 정말 중요한 가치임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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