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싱글녀로서 소외를 느낄 때, 차이일까 차별일까?

 

난 어렸을 적부터,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큰 언니가 있지만. 오빠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날도 작은오빠, 큰오빠, 큰오빠 친구 욱이가 집에서 놀고 있었다. 내 나이 7살 때 쯤. 난 집에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이 났다. 그리곤 좋아라, 오빠들을 좇아다녔다. 남자들이 하는 놀이에 다 참여하였던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열심히 끼어 다녔던 것 같다.

그 날 기억이, 아직도 가끔 다시 떠오르면, 남녀는 유별하다는 옛 고사 성어를 떠올리며 그때의 나를 철부지로 치부하곤 웃음 짓기도 하지만.

지금 40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 남녀가 유별한 차원을 넘어, 남녀가 차별 받고 있는 현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해 버린 나에게 그때의 기억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은.

오빠들, 남자라는 성을 가진 오빠들의 반응이 새롭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나의 뇌는 언제부터인가 남자라는 성의 반응까지도 추적해가며 나에게 남자와 여자는 다른 데, 여자는 언제나 손해라고 외치며, 남자는 언제나 방해라고 외치는 남녀유별의 현실을 차츰 차츰 깨닫게 해주는 기능을 해오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마저 서글퍼지도록.

그 기억의 발단은 어쨌든 나의 고집 때문에 비롯된 것 같다. 작은오빠, 큰오빠, 큰오빠 친구 욱이는 욱이네 집에서 오빠들끼리만 놀겠다고 주장했다. 나는 집에 있으라고 종용한 채.

오빠들끼리만 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그 놀이는 다름 아닌 욱이네 오빠 집 목욕탕에 물을 받아서 남자들끼리 수영(?)은 못하더라도 물장난을 하며 놀자는 것이었다. 셋은 이 모종의 계획을 나한테 감추곤 넌 집에 있어라고 종용해왔다. 그러나 난 지지 않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의 본분과 책임의 완수를 미끼 아닌 전략으로, 오빠니까 오빠로서 나를 어떻게 떼어 놓을 수 있느냐라는 주장을 막내의 막무가내 기질대로 떨어질 수 없다고 우겨댔다.

그러자 오빠들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오빠들끼리 목욕탕에서 놀거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난 안된다고 우겼다. 큰 오빠는 안 되는 이유는 말하지 못하고 굉장히 난감해 하는 모습을 얼굴에 띄우곤, 나에게 사정을 했다. 난 안된다고.

난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오빠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지. 어쨌든 난 끝까지 우겼다. 나도 수영복이 있다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당시 엄마 아버지가 집주인이면서도 작은 집의 사정을 봐주느라 집주인 행세도 못하고 셋방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변변한 목욕탕 구경을 못한 나에게는 환장할 만한 신나는 놀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욱이 오빠는 목욕탕에 물을 받아 놓겠다고 하고 먼저 가고 큰오빠는 작은오빠한테 나를 맡기고는 가버리고. 급기야 작은 오빠는 나한테 짜증을 내고. 그래도 난 수영복을 싸들고 욱이 오빠네 집에 갔다. 신나는 물놀이를 기대하며.

욱이 오빠네 집에 도착했을 때, 오빠들 셋의 표정은, ‘허무와 좌절. 설마 했더니 끝까지

목욕탕 놀이는 고사하고 오빠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욱이 오빠는 나를 피하고, 큰오빤 욱이 오빠와 나 사이에서 난처해하고, 작은오빤 너 때문이다 라는 표정으로 투덜대고 난 욱이 오빠네 목욕탕 구경은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신나는 놀이는 할 수 없었다. 오빠 셋은 풀이 죽어 있었고, 그래도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다른 놀이를 찾으려 했다.

난 여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난 그들에게 왜 그리 반갑지 않은 방해꾼이 되어버렸던 걸까?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라는 것을 느꼈을 뿐. 그 이상한 느낌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나의 뇌 속에 솜박아 있었고, 지금 다시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해답을 아니 그때의 상황을 해석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오빠는 남성이고 난 여성이고 우리는 달랐고. 그때의 나이론 남녀 7세부동석,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을 오빠들은 깨달았고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이렇게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만.

지금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바로, 남녀유별, 남녀차별이 아닌 남성지배의 사회구조에 무서운 아픔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녀평등을 외치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자가 설친다는 이유로 당하는 따돌림과 비아냥거림, 남자들의 저속한 뜻으로 대하는 시선과 행동에 피멍이 들어갔다. 그리고 점차 소외되어갔다.

현재, 내가 방해꾼처럼 기억되지 못하는 소외된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은 옛날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철부지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제 난 철부지가 아닌 한 여자로서 한 여성으로서 소외되어있다.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 사회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라서, 남자들이 끼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놓은 자리, 또한 그들이 여성들의 자리라고 규정한 열등한 자리로 힘없이 소외되어가고 있다.

소외된 이 자리, 이젠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이 자리,

난 그 속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고 살아갈 길을 모색해 가는 지금,

소외된 서글픈 자리가 다시 조금씩 충만하게 채워져 감을 느낀다.

아니 난 소외 되지 않았다. 더 이상의 큰 자리를 얻었다. 나와 같은 성의 사람들이 우리라는 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 갈 때, 언젠가는 꼽사리처럼, 방해꾼처럼 끼이는 자리가 아닌 당당하게 맞서는 자리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의 힘이 되어주고 또한 힘을 얻기 위해, 아직도 살아내려 꿈틀거리는 나를 느끼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