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실천가가 되어야 할까, 사상가가 되어야 할까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다 이런 말이 들어왔다.

 

실천가는 어떤 회의나 위원회에 나가서 늘 올바른 주장만을 하지만, 한걸음 밖으로 벗어나면 모순투성이기 일쑤이다. 오로지 미래, 사상, 신앙만은 예외 없이 옳다. 왜냐하면 세계는 이들에게서 원동력을 얻을 뿐 다른 곳에서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도주의 사상은 휴머니즘의 허상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는 실없는 문학의 망언이며, 인간성의 탐구는 잡담일 뿐이라고 공언하려는 자들은 아직 원숭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인간으로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려야만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사색의 강변에서> 중에서.

 

우리는 보통 행동하지 못함을 자책한다. 행동 없는 믿음, 행동하지 않는 신념, 사상들은 비판되기 좋은 밥이다. 현 정부를 비판한다면서 촛불집회, 태극기 집회 등 각종 집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무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무분별한 비판의식을 갖고 온갖 잣대질을 하며 이 집회, 저 집회 몰려다니는 것, 그것도 모순투성이 사람이 되기 쉬운 일이다. 많은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고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들여다보고 사는지. 자신의 내면에 휴머니즘, 희망, 참된 인간성을 갖추고 사는지 물어볼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갖춘 사람이 진정 올바른 대통령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무분별하게 무비판적으로 감정적으로 색깔론을 들먹이며 무조건적으로 어떤 한 대통령 후보를 지지 하는 것 정말 실물 나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실천가들이 올바른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 모순투성이 라고 말한다. 앉아서 인도주의를 말하고, 희망을 말하고, 휴머니즘을 말하는 것은 잡담, 망언, 탁상공론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 사람이 덜 되었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이 말도 오늘의 현실을 보면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사람됨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이 충만할 때 다른 사람도 비판할 수 있다. 그 때 그 비판은 힘이 되어 세상을 움직일 만큼 큰 원동력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세상은 그 힘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어떤 사람을 무분별하게 추종하고 행동부터 일삼는 것은, 모순투성이를 낳으며, 아무 영양가가 없는 일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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