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위로

 

우리 모두에겐 위로가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이 어디에선가 위로를 받지 못하면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멀쩡해 보여도 실패와 좌절 속에, 외로움 속에, 지독한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선가 눈물지으며 한탄하고, 한숨지으며, 욕지거리 한 사발에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들, 아니 극단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는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말하며, 지독한 평가와 차가운 냉대 속에서도 견뎌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현실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만 한다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사람은 두부류인 것 같습니다. 철저히 현실 분석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는 사람, 또 한 부류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는 사람, 위로를 말하는 사람, 따뜻한 정을 말하는 사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와 저의 체험담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80이 넘으셨는데 몸이 아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음이라는 공포가 밀려오셨나 봅니다. 어머니도 신앙인이시지만, 하늘나라를 믿으시지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아픔과 죽음이라는 공포가 엄습해 올 때는 어머니도 어린아이 같이 불안해 하셨습니다. 다니는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의사선생님은 좀처럼 냉정하셔서 약만 처방해주시고 끝이었어요. 어머니는 어린아이 같이 제가 나을 수 있나요하면서 애처롭게 물어보시는데도 그 의사 선생님은 냉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 가보자 하면서 유명한 의사선생님이 있는 병원을 찾아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소원이라 어머니 하자는 데로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병원을 가보아도 검사 이것저것 해보고 약 처방하고 그리고 냉담한 반응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나을 수 있나요하면서 의사선생님께 어린아이같이 매달리시며 불안해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데 옆에서 안쓰러워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의사선생님들한테 서운했습니다. ‘괜찮아지실 거예요.’ 거짓말이라도 해주지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검사결과를 보고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의사선생님 좀 만나게 해달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병원한군데를 더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분은 어머니께 환하게 웃으면서 약 드시면 좋아지십니다. 괜찮아지십니다. 매일 30분 햇볕보시고 성경도 쓰시고 운동도 하세요.’ 하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성경카드까지 주시는 거였어요. 그 의사선생님이 크리스천이었던 겁니다. 그 날부터 어머니는 달라지기 시작하시는데, 매일 햇볕보시고 식사도 못하셨던 분이 식사도 잘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안 좋은 눈으로 성경을 매일 보시고 쓰시고 너무 달라지셨어요. 아마 제가 보기에는 이러다가 100세까지 거뜬히 사실 것 같습니다.

약이 좋아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의사선생님의 위로의 말 한마디, 희망의 말 한마디로 달라지셨습니다.

 

현실의 냉정한 판단은 무엇입니까. 우리들 모두 다 압니다. ‘인간은 가망이 없습니다. 모두 다 죽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는 우리가 그것을 말해야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이 당신을 향한 계획하심이 있다고 크리스천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스타강사가 젊은 사람들에게 강의하기를 얻어 맞아라, 맞아도 두 눈을 부릅뜨고 맞아라, 그래서 맷집을 키워라, 그러면 꿈을 이룬다.’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무시 받고 멸시받고 얻어맞고 때리고 이것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꿈을 이룬 사람 그렇게 맷집 강해진 사람 나중에 이상한 괴물 되면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이상한 사회가 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 크리스천이라도 위로의 그 한사람이 된다면 사회가 정화되지 않을까요. 맞고 때리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사회가 된다면 인간성파괴의 괴물만 길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희망, 위로의 메시지가 되지도 않는 기대감만 주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정 병들게 하는 쪽은 어느 쪽인가요?

오죽하면 사람들이 위로와 공감에 지갑을 연다고 하지 않습니까. 위로해주고 돈을 버는 마케팅이 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위로 한마디 듣고 싶어서 밤에 여는 심야식당에 포장마차에서 돈을 쓴다고 합니다. 어떤 게스트 하우스나 미장원은 상처 입은 사람들 오세요. 무료입니다.’ 이렇게 내걸고 장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로 받고 다시 찾아와 단골이 되어 그 사업이 번창 한다고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 아닙니까?

크리스천이라면 모두 영혼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 너나 그렇게 해, 목사나 좋은 말만 하면 되지. 현실이 어떤 대, 나는 그런 거 다 이겨낸 사람이야, 그러지 마시고 그런 거 이겨내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지름길로 가는 길,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말과 행동이 있는데.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되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냉정한 판단은 다 압니다. 인간은 가능성이 없습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실을 뛰어넘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말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여서 살길을 다 예비해 놓으셨어. 우리는 살 수 있어.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이렇게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도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셨습니다. 한 여자의 행동에 큰 위로를 받고 예수님을 그렇게 비난하고 배척했던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죽음이라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존재라 죽음도 별거 아니었을까요? 우리랑 똑같이 힘드셨고, 괴로워하셨고,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똑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주고 사랑이 되어준다면 홀로 눈물지으며 아파하고 위로받을 이가 없어 오늘도 한 잔 술로 달래보고 극단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건강한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런 한 사람,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어주는 한 사람이 된다면, 이 냉혹하고 가혹한 현실이 조금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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