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해법, 어머니에게서 배우다

 

 

관계에 대해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이다. 사랑은 관계성을 특징으로 한다. 사랑에도 방법이 있고 기술이 있듯이 관계에도 종류가 있다.

크게 소유론적 관계, 존재론적 관계인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나는 학자가 있을 것이다.  바로 에리히 프롬이다.  많이 읽힌 그의 책에는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등이 있다.  나의 대학교 시절 실연당한 학생들이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소유와 존재의 차이, 소유론적 관계와 존재론적 관계의 차이는 아직도 연구되고 있고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자기계발서를 보면 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관계에 있어서 소유론적 관계가 아니라 이 존재론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한다.

책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거리의 꽃을 보고 아름다워 꺾어서 자기 방에 꽂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소유론적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인데 결국 꽃을 꺾으면 꽃은 파멸된다. 생명을 잃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꽃 자체로 아름답다 하면서 그냥 감상하고 즐기고 돌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꽃을 파멸시키기보다 꽃과 일치되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론적 관계의 특징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관계를 소유 중심으로 보는 사람들은 상대로부터 얻는 것이 없다면 그날로 관계도 끝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상대를 적대적 혹은 이해 타산적으로 본다.

인간관계를 존재론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상대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인격을 중심으로 관계를 규정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체가 삶에 의미를 더해주고 타인의 입장을 수용하며 앞으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람을 본다.

소유론적 관계와 존재론적 관계는 사랑에 있어서도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데, 소유론적 관계로 사랑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를 지배하고 구속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론적 관계에서의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의 약점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한다.

이 존재론적인 관계, 참 매력적이다. 이렇게만 관계 맺는다면 이 세상에 인간관계로 상처 입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존재론적 관계로만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세상의 현실이 경쟁하고 서로 때리고 맞고 싸우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항상 때리는 입장만 되는 것도 아니고 맞는 입장만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본의 아니게 때리는 입장도 될 수 있고 내가 당하는 입장도 될 수 있다.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  요즘 약자들도 무섭다.  연대를 통해서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권력 있는 자들도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약자들의 연대의 힘이다.

 

인간관계의 해법, 어머니에게서 배우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많다. 내가 맞고 들어와도 나를 때린 사람을 욕을 하거나 찾아가서 보복을 해주거나 그러지 않았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겠지. 그게 전부였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항상 지는 것이 이기는 거야, 이 소리 뿐이셨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이제 나이가 들고 종교를 가지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어머니를 다시 생각해 본다.

어머니 하면 사랑이 생각나고 친밀함이 생각난다. 그러나 사랑하면 아버지는 생각이 안 난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방식대로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사랑의 방식이 달랐다. 아버지는 무섭고 권위적이셨고 항상 원칙을 이야기하셨고, 어머니는 친밀하고 희생적인 분이었다.

어머니를 또 정의하자면 어머니는 당하고 당하는 여자였다.

남편의 권위에 눌림 당하고, 자아중심적인 철없는 유년기의 아이들의 짜증에 당하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반항기가 가득한 사춘기 자녀들에게 무시당하고, 자유와 독립을 외치는 청년기의 자녀들에게 외면당하고, 당하고 당하셨다.

그래도 밥 안 먹으면 밥 먹으라고 쫓아다니고 떠먹여 주시기까지 했다. 나는 밥 안 먹는 게 뭔 유세라고 툭하면 밥 안 먹는다고 그랬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제일 무서워했다.  쫓아다니면서 먹이셨다.

그런데 이젠 내가 나이를 먹어 어머니를 보니 그런 어머니가 너무 애틋해 눈물이 난다. 나뿐만 아니라 형제가 넷인데 우리 형제들 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을 보인다. 아버지는 그렇게 찾지도 않고 아버지에게는 그런 애틋한 감정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모두 다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는 희생이고 사랑이고 인내하셨기 때문이다.  많이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걸 자식들이 나중에 깨닫고 성숙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는 당하고 손해만 본다, 억울하다, 어떻게 보복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당한 사람이 더 넓은 사람이고 더 큰 사람이다.  정말 지는 것이 이기는 거라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배운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의 해법은 내가 더 넓어지는 것이다.  당한만큼 더 넓어져 사람들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의 품에 깃들고 싶어 하고 어머니를 찾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내가 당한 것 같지만 내 품이, 내 역량이 더 크고 넓어져 내가 더 필요한 사람이 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았고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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