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따라 인사의 표현, 호감의 표현, 사랑의 표현이 다르다.

난 대학원시절에 미국찬양선교를 가서 많은 미국인들을 만났다. 하루정도 homestay를 하고 다음 지역으로 떠날 때 그들은 항상 허그를 하며 ‘Nice to have you'라고 말해주었다.

노인, 남녀, 애엄마, 애아빠 상관없이 헤어짐이 아쉬워 허깅을 하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때 미국문화는 우리 전통 한국의 문화와는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감정을 바로바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어서 속정이 깊을지언정 허깅을 하거나 뽀뽀를 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내 짧은 미국찬양선교 기간 동안 노인, 애엄마, 애아빠, 심지어 애기들하고 헤어지면서 허깅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때 느낀 것은 친밀 함자체였고 하루정도의 기간이었지만 나를 이렇게 받아주고 반긴 것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느낀 시간이었다.

만약 예수님과 허깅을 한다면 아니 나같은 작은 아이는 그저 안아주시는 거라면 얼마나 친밀한 사랑을 느낄까. 친밀함도 친밀함이지만 나를 보호하신다는 믿음으로 충만할 수 있는 순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늘 안아주신다. 항상 안아 들어 올려주신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나를 안고 바다 깊은 데로 성큼 들어가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누구나 있을지 모른다. 어린 마음에 바다를 보며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의 억센 팔에 안아들어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을 금방느끼고 유유자적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그 작은 아이는 해변가에서 발이나 담그고 물장구나 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안아주시면 아버지 키보다는 깊지 않은 데까지 성큼 다가갈 수 있다. 그 때 드는 약간의 두려움을 금방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 아버지의 억센 팔에 대한 믿음, 난 절대 위험한 깊은 바다에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때문에 금방 안전함을 느낀다.

그 아버지의 안음으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얕은 바다가 아닌 깊은 바다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핍박받던 이집트에서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할 때 모세는 이 출애굽을 하나님의 안아주심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의 안아주심으로 모든 난관과 어려움이 닥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두 팔로 보호하여 주심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안아주심으로 표현했나보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안아주신다. 안아주신다는 말은 항상 우리를 보호하여 주신다는 말이다. 깊은 바다, 난관을 만날 때, 아버지의 억센 두팔의 힘을 느끼듯이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을 느끼게 된다.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만불평을 일삼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지켜주셨는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두 팔에 안겨있고 아님 그의 어깨위에 올라타 깊은 바다 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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