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경직성과 유연성

 

마가복음 3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가를 가지고 시비를 걸고 예수님을 고발하려 한다. 이에 예수님은 아주 통쾌한 말씀을 하신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시고 탄식하셨다고 한다. 그들은 결국 회개치 못하고 오히려 이것을 빌미로 예수님을 죽일 것을 의논한다.

 

이 이야기를 다 알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에, 형식에, 외연에 매달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빌미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의 성취시기 때문에 율법의 외연을 넘어 내면과 그 정신의 실천에 관심이 있으셨다. 즉 예수님은 거룩한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순위로도 따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일임을 몸소 보여주셨고,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바리새인과 같은 율법의 외연에 매달리는 신앙의 모습을 현대인의 신앙생활에도 볼 수 있다. 주일 성수를 목숨 걸고 지키는 한 극 보수의 신앙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기가 지금 눈이 나빠 안경을 끼는 것은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주일 성수를 어긴 적이 있는 데 그것 때문에 벌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왜 그 사람은 그런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안식일 즉 주일까지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주신 것인데 주일 성수를 한 번 어길 때 마다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살아남아 있을 신앙인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신앙은 율법의 정신이 아니라 문자에 매달리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이어지기 쉽고 자신도 쉽게 죄책감에 빠지고 남도 쉽게 정죄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위해 오셨다. 이것만 깨달아도 남을 쉽게 정죄하거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거나, 축복보다는 벌을 먼저 말하고, 사랑보다는 회개를 먼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는 나를 전도했다. 그 때 나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절망과 실연의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회개하여야 한다. 기도하여야 한다. 안 그러면 지옥 간다.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고 자기가 대단한 영성을 가진 해결사인 듯 어떤 대책도 내게 말하지 않았다. ‘교회 와볼래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따뜻한 인도에 의해 교회에 와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자양분속에서 예수님을 알아갔다.

율법부터, 당위부터 강조하면 신앙은 경직되고 정죄,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유함과 따뜻함 그 속에 넘치는 사랑이 있으면 그 신앙은 유연성을 가지게 된다. 정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죄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형식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형식으로 사랑을 이루려고 하지 말고 사랑이라는 자유함 속에서 형식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사랑을 먼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그 외연을 자연스럽게 성취해 나간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는가.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몇 시간 마다 아기에게 밥을 주어야 하고 몇 개월마다 아기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야 하고... 이것은 원칙이 아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면 안하려야 안할 수 없는 일들이다. 사랑이 먼저 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취하는 행동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먹고 자란다.

신앙의 유연성을 가지자, 사랑에서 오는 자유함이 먼저다. 이럴 때 남을 정죄하고 자신도 정죄하는 가장 사악한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을 할 때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약속자체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약속을 지켜내려 애쓴다.

형식이면의 내면, 그 알맹이를 숭고히 지키려 하면 외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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