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는 여자

사무엘상 1: 1-18

 

사무엘상 11절은 엘가나라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한나요, 또 한 사람은 브닌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처로 보이는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첩으로 보이는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가족이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사장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엘리는 그때당시 90세로 늙고 영력이 쇠하여진 상태였고 두 아들들은 부패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훌륭한 제사장이었던 엘리제사장도 말년에 좋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고 엘리는 그 소리를 듣자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포커스가 엘가나의 가족입니다. 엘가나가 이 예배를 드리러 갈 때면 제물의 분 깃을 즉 지금의 감사헌금이라 쳐봅시다. 그것을 그의 아내와 모든 자녀에게 주었다고 했는데 한나는 더욱 사랑해서 갑절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첩인 브닌나가 남편의 한나에 대한 사랑이 노골적이니까, 분했는지 그 예배드리는 중에 이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고 괴롭게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격분시키고 괴롭게 할 정도 면, 애 못났는 여자라고 비웃는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나한테 예배드리면 뭐해, 헌금 드리면 뭐해, 기도드리면 뭐해, 애도 못 낳는데,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거야, 너의 신앙은 거짓이야, 저주받은 거야 저주”. 이렇게 말하면서 긁어댔을 것입니다.

애 못 낳는 것이 한나의 지금까지 쌓아온 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흔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애를 못 낳는다는 것은 여성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여자 싱글이 많은데 결혼은 안 해도 애는 낳겠다는 여자가 많아요. 저도 여자라서 아는데 그것이 본능과도 같은 것이어서 애를 낳아 길러보고 싶은 마음이 여성에게는 다 있습니다. 한나 당시 때는 자녀의 출산이 복의 기준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여성의 역할은 이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번도 아니고 예배드리러 갈 때마다 브닌나가 염장을 지르는 거예요. 그래서 한나가 울고 먹지를 않습니다. 한나를 사랑하는 남편 엘가나가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아니하고 어찌하여 슬퍼하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이렇게 위로하나 이럴 때는 남편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가 성경에 세 번이나 나옵니다. 자신의 아내를 지극히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남편이 있다는 것도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남편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엘가나는 아내 한나에게 자기를 아들이라고 여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권위적인 남편이 아니라 지극히 자상한 남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이 한나에겐 위로가 안 됩니다. 이건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던 거예요.

그런데 저 같았으면 남편 엘가나에게 브닌나가 내 염장을 지르고 나를 괴롭힌다라고 말을 해서 즉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걸 이용해서 브닌나에게 복수라도 하고 싶었을 텐데..... 한나는 성숙한 여자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남편한테 했다는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보통여자 같으면 남편의 사랑을 이용하여 복수라도 하고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겠죠... 그런데 그러면 가정에 분란만 일어나고 가정이 깨지고 남편마저 괴롭게 하는 일이 됩니다. 윗사람에게 자꾸 일러바치는 것을 참소하고 하죠. 참소는 참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직장생활에서 중간상사가 아랫사람을 윗사람에게 참소하고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엄마가 자식의 잘못된 점만 아버지에게 이르고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당연히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그 사람을 고치려고 그랬다 하면서, 합리화하는데 이렇게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 마땅합니까. 그렇다면 그 조직이 잘되고 그 가정이 잘 되야 하는데 제가 살면서 잘되는 집, 잘되는 조직 못 봤습니다. 깨지고 분열되고 나가고 가출하고. 경험해봐서 다 아실 거예요. 참소는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한나는 아무 말 안하고 참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갑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남편이 날 사랑하나 저는 참 서럽습니다. 애를 못 낳는 것이 무슨 죄라고 제 한평생 쌓아온 신앙생활도 시험받고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받은 것이라고 저를 폄하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 정말 서럽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여종임을 증명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아주시옵소서 한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을까요. 마침 엘리 제사장이 와서 한나를 보았는데, 속으로 말하고 입술만 움직이므로 술에 취한 줄 알고 술을 끊으라고 충고를 합니다. 이 한나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당대의 최고의 제사장이 이제 나이도 먹고 영력도 떨어져서 기도하는 것과 술 취한 것도 분간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그 예배드리는 곳에 술 취한 사람도 종종 온다는 것이고, 아니면 목회자가 술을 먹고 그래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분간을 못하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의 교회가 어땠는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나는 그때당시 점점 타락해가는 교회에 더 심정이 동해서 정말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서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한나는 엘리를 무시하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요새 같으면 점점 타락해가고 자식들도 부패하고 망해가는 목사 존경이나 하겠습니까.

한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슬퍼서 하나님께 제 심정을 토로한 것 뿐입니다. 저를 악한 여자로 보지 마세요. 제가 원통함과 한이 많아서 그럽니다. 목사님. 목사님 어떡하면 좋아요.

그 엘리에게도 한나의 진심과 비장한 마음이 통했는지 엘리가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래도 목사님에게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 엘리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엘리에게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마음이 환해져서 돌아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이 없었더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위대함은 자신의 억울함을 남편의 사랑, 사람에 힘입어 해결하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기도한데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존중했습니다. 그 당시 그 목회자가 타락해간다는 소문도 있고 자식들도 엉망이다라는 소문이 있어도 목회자를 존중하고 당신의 여종이라 고백하면서 은혜받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정말 믿음에, 신앙에 욕심이 많은 여자였어요. 자신의 자존심은 건드려도 자신의 신앙을 건드리는 건 용납을 못했어요. 그래서 한나는 자식을 하나 주세요이렇게 기도 하지 않고 이 자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서원까지 한 거예요.

우리는 한나는 간절히 기도해서 자식을 못 낳았다가 자식을 낳았다 라는 정도로만 한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데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참 사랑했어요. 자식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폄하되는 것을 자존심이 상하는 것보다 더 못견뎌한 여자예요. 그래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자식을 하나님께 드린 겁니다. 그래서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낳고 젖 뗀 후 바로 하나님께 바로 드립니다. 독한 모성이예요.

간절히 기도하면 한나 처럼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단순히 기억할 것이 아니라 한나의 인격, 믿음, 신앙을 다 두루 살펴보아야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한 잔꾀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 참았다는 것, 해결방법을 하나님께 기도로 찾았다는 것.,, 목회자가 어떤 평을 듣던지 간에 목회자를 존중했다는 것, 기도의 목적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보다 하나님 편에서 유익을 찾았다는 것. 신앙에 있어선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여자였다는 것.

이것이 제가 바라 본 한나라는 여자입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자식이 있고 없고, 부자가 아니고 부자고, 이런 겉모습, 현상으로 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 사람의 신앙마저 평가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복이고 저주고 이런 말은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이 복을 받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성공과 행복은 개인의 기준에 달려있고 하나님의 복은 물질적인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인 축복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브닌나가 되지 마세요. 혹시 여러분 주위에 브닌나 같은 사람이 많더라도 한나같은 사람이 되세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래 참고 기도하고, 남편 사랑보다 하나님 사랑을 더욱 찾는 사람이 되세요. 목회자를 존중하세요. 그런 어머니가 사무엘 같은 이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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