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머니, 아니 엄마다.

(요한복음 131-9)

 

 

유월절 전인 어느 날 저녁,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를 미리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의미 있게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일을 행하신다. 그 일이란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후의 행동 즉, 그 두르신 수건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일까지 잊지 않으시고 꼼꼼히 이 일을 행하신다.

그 당시는 종이 밖에서 들어온 주인이나 손님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주님이시며 스승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 사건을 예수님 자신을 종의 위치로 낮추신 즉, 사랑, 겸손 또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과정 중의 행동은 너무나 익숙하고 많이 해본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리고 제자들 중에서도 그런 예수님의 행동을 거부하거나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가 없다. 유독 베드로만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라고 완강히 거부한다.

스승님이신데 어떻게 저 같은 제자의 발을 씻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양말도 스타킹도 안 신어서, 먼지가 잔뜩 묻고 정말 시커먼데, 안됩니다. 제가 씻겨드리면 씻겨드렸지 이것은 아니되올 일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라고 믿고 또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쫓아다니는 예수님이 자신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는 것에 민망하고 황송함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씻기는 행위자체에 중점을 두어 죄사함, 구원 혹은 침례나 성결의 의미로 해석되어 왔지만,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려 한다. 그 의미는 즉,

베드로야, 네가 진정 나를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느냐 네가 지금까지 나와 같이 지내면서 네가 느끼는 것이 고작 그것밖에 안되느냐, 이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지냈는데(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이 스승으로 밖에 여기지 않느냐, 그래서 그렇게 날 어려워하느냐? 다른 제자들을 보라, 아무도 날 어려워하지 않는다. 발을 씻겨달라고 내밀기도 하고 손과 머리까지 씻기어 달라고 내밀지 않느냐, 또한 나의 품에 기대어 눕기도 하고 나의 가슴에 기대어 질문을 하기도 하지 않느냐?(요한 13:23, 25) 너와 나의 진정한 관계가 무엇이냐?’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과 제자와의 관계가 단순히 주와 종,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만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와 나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 엄마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뭐 그렇게 이상하냐, 너는 나의 핏줄이다. 너와 나에게선 아무 거리감도 없다. 너와 난 촌수로 따지면 1촌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와 나의 거리감은(-네가 생각하는 나와의 관계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세족 사건속에서(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자신을 낮추심, 섬김, 겸손등의 윤리적 가치를 이야기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제자들과 진정 원하는 관계를 말씀하신 것으로 본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위는 주로서 자신을 낮추신 섬김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행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리고 너무나 친밀한 행위라서-엄마가 자식을 목욕시켜주는 것처럼- 엄마의 (나는 이런 친밀한 관계로 인하여 엄마란 단어를 쓰고 싶다.) 행동은 분명 섬김, 자기희생적인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고 깨닫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친밀하고 자연스러워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바로 이런 관계이다. 예수님의 사랑 또한 어머니 아니 엄마와의 친밀한 사랑처럼 너무 우리에게 익숙해서 깨닫지도 감사하지도 못하는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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