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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기도>, 기도란 하나님과의 쌍방향 소통을 통한 인격의 변화

 

 

신앙생활하면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등 이런류의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간절히 간구하면서 기도했을 때 모두 짠하고 응답받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우리 모두 기도에 응답받지 못해서 하나님께 섭섭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내리고 새롭게 인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도를 신비의 경지로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기도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사이의 소통이다이렇게 생각해서 기도를 신비한 체험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팀 켈러는 기도를 신비로만 몰아가지 않는다. 기도를 통해서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는 신비주의에 포커스를 두지 않는다. 그는 기도에는 머리와 가슴이 다 필요한 것이며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기도는 이성적인 신비주의라고도 표현한다.

팀 켈러는 칼바르트의 기도를 하나님을 향한 불치의 향수병(incurable God-sickness)'이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종교가 기도를 하고 믿지 않은 사람도 기도를 한다. 어떤 연구 논문에 보면 무신론자들 가운데 30퍼센트 정도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내면에는 기도하고자 하는 본능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기도는 이미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는 팀 켈러가 말한 기도의 정의의 중요한 포인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반응이다.

인간이라면 저마다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하나님이란 존재와 실재가 서로 닿고 소통하기를 추구하는 행위가 기도이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데 거기에 반응하는 것 즉 하나님께 드리는 답변이 기도이다. 거기에는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성해질수록 기도도 풍성해지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알면 기도도 피상적으로 머물게 되고 본질에서 벗어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기도는 듣고 대화하고 만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아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반응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언제든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기도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구하기보다 듣기가 먼저여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신다. 우리 인간 편에서 먼저 찾아갈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기도이다. 1차원적 기도, 즉 본능적인 기도는 내가 급할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쏘아 올리는 일종의 구조 요청 신호탄이다.(주세요, 달라고 구하는 기도) 반면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기도 (영적인) 선물로서의 기도는 말로 표현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시에 답하는 참되고 인격적인 대화다.(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이고 사귀는 것이다)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체득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제 힘과 의지로 말문이 트였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고, 말해주는 이가 있기에 말을 배우는 것이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언어의 바다에 첨벙 빠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한 마디 한 마디 서서히 응답하는 능력을 체득하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말은 죄다 응답하는 말이며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말하는 법이라고 설명한다.

피터슨이 이 글을 쓴 지 알마 안 돼서부터, 갓난쟁이 시절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까지 어린아이들이 노출되는 단어의 개수와 어휘의 폭에 따라 이해력과 소통 능력이 크게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인간은 들은 만큼 말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까마득히 앞선 것이다. 말씀이 먼저 있었다. 이것을 유념하는 것이 기도 훈련에 필수적이다. 이 말은 우리가 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듣는 것이 먼저이다.

 

3. 기도는 하나님과의 쌍방향 소통을 통한 우리의 인격적인 변화이다.

욥을 보자. 욥은 고난 중에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자기의 출생을 저주할 정도로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고난 중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욥은 온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엄 앞에 욥은 납작 엎드린다. 그리고 욥은 회개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된 욥은 불평과 하소연에서 하나님께 회개와 찬양으로 바뀌어 가게 된 것이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 하나님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됨됨이가 변하고 원망과 불평이 회개와 감사와 찬양으로 변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 반응하여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기도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기에 대한 반응의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욥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음성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 되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행적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드러내셨다. 우리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 태양을 바라보려면 필터가 필요하다. 그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수님이다. 성경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인간본질의 필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기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됨됨이의 변화, 인격적인 변화까지도 기도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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