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 간 자리>, 인생의 두 얼굴, 야누스

 

 

야누스의 문, 행운의 시작

극한 서부전선에서 살아남은 남자주인공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고독한 섬, 이름이 야누스인 섬에 등대지기로 지원한다. 야누스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지키는 행운의 신을 뜻한다. 그러나 이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중인격을 가진 야누스의 섬, 여기서 운명의 장난은 일어난다.

이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남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하고 둘이는 행복한 섬 생활을 한다. 그리고 사랑하고 애를 갖고 그런데 그렇게 갖은 애가 두 번이나 유산이 된다.  절망과 비참에 빠진 두 부부에게 행운의 시작인 듯,  불행의 시작인 듯,  찾아온 것이 나룻배 한 조각이었다.  거기에는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죽어 있었고 갓 태어난 아기가 울고 있었다.  예쁜 여자아기를 본 아내는 기르고 싶어 하고 남자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  보고해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아내의 끈질긴 설득에 그 남자는 모든 걸 깜쪽 같이 숨기고 아내가 낳은 아기처럼 숨겨서 그 아이를 기르기 시작한다.  모두 그 아이에게 빠져 아빠가 된 기쁨, 엄마가 된 기쁨을 만끽하고 살아가는데...

 

야누스의 이면의 문, 불행의 시작

어느 날, 남자 주인공은 이 아이를 낳은 실제 엄마를 알게 된다.  남편과 딸이 죽은 줄로 알고 그 묘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아이의 실제 엄마, 그 때부터 남자주인공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낳은 엄마에게 '애는 잘 있다'는 편지를 보내는데...  이 낳은 실제 엄마는 대부호의 딸이었고 그때부터 그 편지를 실마리로 딸을 찾으려고 경사들을 동원하고 상금까지 동원한다.

주인공 남편은 아기와 함께 조각배에서 발견했던 조그만 장난감까지도 그 실제 낳은 부인에게 보내고...  사건은 좁혀지고 배상금은 높아지고...

결국 주인공 남편은 자신이 예감한 대로, 경사한테 끌려 간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빼앗긴 채 절규를 한다. 남편은 부인은 모르고 다 자기가 꾸며낸 짓이며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쓰려한다.  조각배의 남자는 죽어있었으나 남자 주인공이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이기에 경사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살인죄까지 덮어씌우려 하는데...

 

행복이란 이면의 죄책감이 부른 불행, 모성을 선택하느냐, 남편의 사랑을 선택하느냐

조각배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실제 낳아준 엄마를 만났는데도 키워준 엄마를 못 잊어 울고 가출까지 하는데... 그 낳은 엄마는 그 충격으로 길러 준 엄마에게 찾아가 남편의 살인죄를 인정하면 아이를 키우도록 해주겠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모성과 남편에 대한 사랑사이에서의 갈등, 남편이 실마리를 준 일 때문에 자신의 모든 행복을 빼앗겨 버렸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아내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남편에게로 달려간다. 그리고 경사에게 외친다. 남편은 죽이지 않았다고.  내가 우겨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남편과 아내는 같이 감옥에 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를 낳은 실제 엄마는 죽은 남편의 착한 성품을 생각하며, 그 두 사람을 용서하고 선처를 말한다. 몇 개월만 징역살고 벌금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인생은 다시 제 자리에...

장면은 바뀌어 세월은 흐른 듯, 언덕위의 조그만 집, 주인공 남편은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고...

어느 날, 한 손님이 찾아온다. 예쁜 아가씨와 아기.  그녀는 섬에서 그가 길러준 딸 루시 였다.

모든 이해와 용서가 일어난 순간,  그녀는 그를 아빠로 여긴 것일까? 자주 찾아와봐도 되냐고 묻는다.

그는 아내를 잃었지만 그의 길러준 딸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모든 운명의 장난은 제자리를 찾았다.  죄책감은 해결되고 아내는 죽었지만, 그는 딸을 찾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선한 사람들의 사랑과 용서가 있는 이야기, 거기에 여자로서 낳아준 사람이나 길러준 사람이나 모성으로 괴로워하는 모습까지 보기 가슴 아프다.

이 영화가 가르쳐 준 것은 행운의 여신의 미소에 금방 좋아할 것이 없다는 것, 그 이면은 우리를 따라 다니며 괴롭힌다. 

남편의 죄책감으로 부터 생긴 운명의 뒤바뀜, 이것을 야뉴스의 장난으로만 보아야 할까.

우리 내면의 이중성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

주인공 남편은 영화 첫부분부터 고립을 택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죄책을 느끼며... 

또 한 번의 행운에 대한 죄책감, 그 양심에 박수를 칠 수가 없다. 그 남편의 아내를 보면.

그의 아내는 모든 행복(기른 딸)을 빼앗기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우연한 행운에 자유롭지 못하다. 죄책의 양심의 소리가 따라다니므로.

사람이 뭔가, 인생이 뭔가에 대해 더 성찰하게 해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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