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각해 보면 원수에게도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 벤허를 보고 그것을 느꼈습니다.

벤허, 2016년 작품이 나온 것 아십니까. 저는 2016년 추석 때 영화관에서 보았는데 50년 전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으나 저는 어쨌거나 아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하려는 주제가 용서와 화해였다는 것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 아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귀족 가문의 왕자인 유다 벤허와 그 가문에 입양된 메살라, 이 배다른 형제가 그 당시 사회 정치 구조 속에 얽히면서 원수가 되어 복수를 하는 내용입니다. 유다 벤허는 억울하게 로마에 반대하는 극우파 세력을 도왔다는 누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노예 신세가 됩니다. 그렇게 된 데는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성공만을 향해 달리는 메살라의 역할이 컸습니다. 유다 벤허는 배의 노를 젓는 노예생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채찍질 맞아가며, 쇠사슬에 묶인 채로 짐승보다도 못한 그 생활을 견디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중간 생략하고, 어쨌든 살아남아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기는 데 그것이 바로 전차 경주입니다. 참 명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경주에서 유다 벤허가 결국 승리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부도 얻게 되는 데 중요한 것은 그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벤허가 인생에서 살짝살짝 마주쳤던 예수님, 돌에 맞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셨던 예수님, 벤허가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고 있을 때 물을 먹여 주셨던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하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신 장면을 보고 유다 벤허는 흐느껴 웁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메살라 한테 입니다. 전차 경주에 져서 다리가 불구가 된 메살라, 이제는 자기한테 분노하고 또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메살라. 그에게 벤허는 말합니다. 메살라, 네가 우리가 이렇게 되기 전, 옛날 청년시절에, 내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 의식을 잃은 나를 엎고 그 먼 거리를 달려 집으로 갔던 것, 그리고 내가 낫기를 바라면서 네가 믿고 있는 신상을 보며 기도했던 것, 그 때 기억나니, 더 이상 살생은 안 돼 하면서 자기를 죽이려는 메살라를 부둥켜안고 벤허는 웁니다. 그들은 같이 웁니다. 예수님의 사랑처럼 예수님의 용서처럼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고 영화는 가족도 찾고 다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가족입니까. 친구입니까. 친지입니까. 교회교우들입니까. 원수라고 하지만 잘 기억해 보세요. 그들과 사랑을 나눈 기억들, 사랑을 받은 기억들이 꼭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할 원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의 사랑으로 이렇게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왜곡해서 잘해주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이 말씀의 뜻을 잘 새겨야 합니다. 사랑의 빚은 제일 우선적으로 복음의 빚을 말합니다. 우리에겐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해야 할 이유, 이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성공의 멋진 이유, 멋진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항상 숙제처럼 우리의 의무처럼 마음에 새기고 간직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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