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몇 가지 반론

 

이 장에서 루이스는 도덕률을 말하는데, 그의 도덕률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도덕률은 본능 중 하나도 아니고 본능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닙니다. 도덕률은 본능들을 지휘하여 일종의 곡조(우리가 이나 옳은 행동이라고 부르는 곡조)를 만들어내는 어떤 것입니다.”(37p)

루이스는 자연법, 즉 다른 말로 도덕률을 본능보단 한 수 위의 것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덕률이 분명 인간의 행동 속에서 드러날 때 본능에 질 때가 더 많은 사실을 왜 간과하는가. 그는 원죄나 죄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죄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도덕의 문제와는 다르다.

 

루이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의 예를 들었다. 이를테면 도덕률은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된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반론이다. 루이스는 옳고 그름, 바른 행동의 규칙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고 수학과 같은 진리라고 말하면서 반론을 수용하지 않는다.  

루이스가 도덕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인간에게 주어졌는지 설명 못한다면 도덕률이 교육을 통한 주입된 관습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세계 각 나라마다 도덕적 관습은 약간씩 다르다. 지역에 따라 터무니없이 차이가 날 때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허용되는 행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허용이 되지 않은 일례도 많다. 이를 철학자들은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계약설을 옹호하는 사상가들은 도덕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일종의 계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도덕률을 그냥 수학과 같은 공식의 진리이다라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짧은 사색,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강. 인간본성의 법칙  (0) 2019.02.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