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죄의식은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레이먼 호킨스(David Ramon Hawkins, 192763~ 2012919)박사는 모든 의식수준을 척도로 나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주장은 만물과 사람은 모두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그 에너지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아는데 예를 들어 테레사 수녀의 에너지는 아돌프 히틀러와 분명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의식수준을 척도로 나타냈는데, 그 에너지 힘을 1에서 1000사이로 나타내고 완전한 깨달음의 수준은 1000인데. 예수나 부처를 1000이라고 한다면 의식의 수준 맨 아래에서 죽음 가까이에 있는 죄의식은 30이고 수치심의 수준은 20입니다. 가까스로 생존하는 정도입니다. 이 죄책감이 의식수준에서 얼마나 나쁘냐면 죄책감은 수치심까지 동반합니다. 그리고 죄책감은 누군가에게 벌을 주고 싶거나 스스로 받고 싶어 하는 감정이고 자기거부나 자기 학대, 자기 파괴에 빠지고 회한과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 내 탓이다 하면서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고 자살행위, 자기혐오까지 그리고 어떤 경우는 자기혐오를 사악한 타인에게 뒤집어씌우는 투사 현상도 흔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인성 육체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죄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근력을 시험해 달라고 하면 근육이 순간적으로 약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죄책감의 본성은 파괴적입니다.

그런데 죄책감, 죄의식을 찬양하는 옹호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죄책감은 우리에게 좋다라는 것입니다. 적절한 죄책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예는 우리가 어렸을 때 조심성 없이 길을 건너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배웁니다. 그래서 신호를 어기거나 길을 잘못 건넜을 때 아이의 미숙한 마음에는 현실을 보는 눈 대신 죄책감이 들어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잘못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의 99퍼센트는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장 경건하고 온화하고 악의 없는 사람들이 죄책감으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죄책감은 자신을 비난해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며 스스로 못을 박는 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기과잉시대 자기과시시대에 이런 죄의식이 이젠 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래야 겸손해지고 인격수양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내적인 죄에 맞서서 싸우면서 인격을 닦았는데 자신의 악을 대적함으로써 겸손하면서 안정적이고 온유한 사람이 되며 그 품성에 걸맞은 자존감을 갖는 사람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라는 개념을 없애 버리면 선한 사람으로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을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이 삶을 상징하듯, 죄책감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죄의식에 빠져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 이웃사람이 던진 부정적 한마디에도 죽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육체적 질병과 연결됩니다. 죄의식은 우리가 하나님 형상 닮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본성은 본래 천진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만듭니다.

저는 죄의식은 본능처럼 갖고 있는 것이고, 적절한 죄의식은 도덕의식에 좋지만 이것은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라 이것을 기독교가 부축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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