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언제 부끄러움을 느끼십니까. 제가 처음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정말 어릴 적 몇 살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유치원도 안다녔던 어린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를, 화장실에 가서입니다. 그 화장실은 사방이 막혀있었는데, 위가, 하늘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부끄러웠을까요. 그 어린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여다보시면 어떡하지’ 그 언뜻 든 생각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그런데 왜 제가 그런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낍니다. 원죄와 연관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처음에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연스런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알 수 있는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는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수치심은 죄의식과도 맛 물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죄를 저지를 때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죄의식과 수치심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둘을 구분지어 설명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수치심은 죄의식과 달리 자기중심적인 감정과 타인에 대한 적의를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의식은 종종 회복을 추구하는 태도, 즉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즉 수치심은 자기가치감정 즉 self-esteem과 관련이 있어서 자기 존재(being)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인에 대해서도 적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은 자기 행동(doing)에 대하여 괴로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한 행동을 교정하고, 또는 용서하고 용서받음으로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수치심입니다. 죄의식보다 이 수치심을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도 수치심을 느낍니다. 중학교 시절 제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시절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수치심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생긴 물질적 어려움보다도 더 싫었던 것이 바로 아이들 앞에서 느낀 수치심의 감정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의 죽음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 때문에 그는 친구들과도 더 멀어지고 본인이 스스로 사람들 눈치만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수치심은 자기가치 감정을 낮아지게 했고 그것이 열등감으로 연결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을 못 열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이 친구가 신앙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친 이러한 고난에도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자신의 신앙적 해석을 통해 치유가 되면서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에게 닥친 고난에 대한 이유를 모른 채 어려움을 당한다면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기가치에 대해서 열등함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 뜻, 그 이유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에도 자기 죄로 받는 고난이 있고 하나님 뜻에 의한 고난이 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한 고난은 부끄러운 고난이지만 하나님 뜻에 의한 고난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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