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해치는 것, 감정과 상상력?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문학가인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제 믿음은 이성에 근거해 있습니다. 정작 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저의 상상력과 감정입니다. 믿음과 이성이 한 편이 되고, 감정과 상상력이 다른 편이 되어 싸움을 벌이는 것이죠.(219p. 홍성사)

 

현 시대는 감성의 시대라고 한다. 기독교가 이 감성에 의지에 예배에 찬양을 도입한다든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도 찬양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떤 예배는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애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귀중하다. 이 감성이 영성으로까지 통한다. 그런데 감성은 영구성을 목표로 할 때는 약점을 가진다. C.S. 루이스도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감정과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명 감성은 믿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지만 그것이 이성에 의해 견고히 유지될 때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말한다.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영성은 불안한 것이라고. 현실직시의 영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는 이성의 작용이 필요하며, 그 이성이 믿음을 더 견고히 하여, 믿음이 평생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루이스가 말한 감정과 상상력은 공상이거나, 불안을 동반하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뜬구름 잡는 영성이다. 난 이것의 폐해를 많이 겪었고 많이 보았다. 예를 들자면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자매가 무턱대고 나는 신데렐라가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 기도한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자매는 환상 속에서 어떤 남성이 떠올랐는데 그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 그 남자가 하나님이 주신 남자다라며 기도한다 라고 하는 경우가 실제 있었다. 특히 결혼에 대해서 뜬구름 잡는 영성을 가진 자매가 많다. 정말 결혼이 특히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뜬구름 잡는 영성은 공상과 잠시 흥분된 감정을 수반한다. 이런 경우 현실에 부딪쳐 많은 상처를 입고 끝난 경우를 본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떠난 경우도 많이 보았다. 믿음에는 현실 직시가 필요하고 이것은 이성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이성의 노력이 수반된 감성과 상상력의 나래가 큰 믿음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직시와 현실의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도 감성보다는 이성의 작용이 먼저 있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의한 것이다. 믿음은 한 순간의 기분도 감정도 아니다. 끝까지 평생 가는 것이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 이성의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감정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정말 좋지만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근거 없는 상상, 근거 없는 감정은 믿음을 해친다. 찬양예배를 뜨겁게 함으로써 한 순간의 믿음의 감정, 사랑의 감정, 단시간의 열정을 끌어낼 수 있지만 끝까지 고수되지가 않는다. 믿음은 상상력이라고, 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상상력은 현실에 바탕 해야한다. 현실의 도를 지나쳤을 때 그것은 공상일 확률의 가능성이 많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은 이성에 근거한 것이다.

감성의 시대에, 감정의 중요성을 설파하여야 하지만, 끝까지 가는 믿음은 이성을 동반해야 함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감정은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끌고 영성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기적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단시간, 단발성, 단순성에 기초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끝까지 가야 한다. 우리의 이성의 노력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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