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니체를 허무주의자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세상에서는 어떤 기대감도 가질 수 없다는 말로 비극적으로 들리나 그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초인의 개념을 말한다. 그 초인은 담대히 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신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도약, 창조적인 도약의 출발점, 즉 도움닫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허무를 말한 것이 아니라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를 말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초인을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크리스천이라도 때때로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다. 하나님은 죽었다, 라는 절망감을 수없이 겪고 산다. 그러나 그 믿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그 믿음의 고민위에서 몸부림쳐본 사람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 갈 수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초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니체는 신은 없다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초극해보려는 의지를 말했지만, 나는 신은 없다라고 느끼는 상황에서조차 신의 뜻을 찾고 일어서는 사람, 개념은 다르나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로 볼 때 두 사람의 일생은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지언정 그들을 초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때로 깊은 절망에서 더 창조적인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밑바닥을 칠 때 그 반동의 힘이 생기는 것처럼.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니체의 해석이 나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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