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덕의식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권선징악에 대해 잠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도덕의식의 밑바탕에는 권선징악의 사고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흥부전, 심청전, 콩쥐 팥쥐 같은 동화와 서양의 신데렐라,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소설은 착한 사람은 결국 잘되고, 나쁜 사람,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내용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도 이 권선징악의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 구조를 갖고 있는 드라마에 열광하고 통쾌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나 지금이나 “착한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고 악한 사람은 징벌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소원하는 것일 겁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꼭 필요하며 그래야지 아이들이 삐뚤어지게 안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현실에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악한들,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징벌 받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게 됩니다.
어쨌든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이 드라마들처럼 악인이 처벌받고 착한 사람이 헤피 엔딩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니체라는 철학자는 이것을 비웃습니다. 니체는 우리의 도덕의식의 바탕에 보상과 형벌이 있다고 믿는 것조차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니체가 예를 든 것이 이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보상을 기대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도덕의식의 바탕에는 보상과 형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니체의 책을 독어원어로 읽고 있는데, 물론 번역서의 도움을 받지만, 여러분도 니체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반기독교적인 글을 쓴 철학자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 기독교적이지만 니체의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잘 꼬집어 주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권선징악을 믿고 있지만 어떤 때는 니체처럼 보상과 형벌이 없다고 믿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렇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고도 멀쩡히 잘 살며,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더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을 보면, 악한 자가 꼭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반면 선하게, 착하게 사는 사람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난을 받으며 사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이 온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서두를 엉뚱하게 권선징악, 보상과 형벌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하박국 1장에서도 하박국이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것이 왜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냐는 것입니다. 악의 문제는 고난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신학적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선 이런 질문이 나온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박국당시 시대상황은 요시야 왕의 부흥이후에 요시야 왕이 죽자 유다의 통치자들이 더욱 악해져 율법 책을 태우고 의인들이 큰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악한 시대에 보내진 하박국 선지자는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하나님 앞에 탄식의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 중에 언급된 말이 간악, 패역, 겁탈, 강포, 변론, 분쟁, 불의 이러한 삭막한 말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들이 유다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2000년도 더 전인 옛날이나 지금이나 악하기 그지없는 것 같습니다. 하박국은 왜 이런 일들이 유다에 일어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탄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하박국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갈대아인을 일으켜 악한 유다를 징벌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갈대아인은 바벨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 거대한 악한 세력을 일으켜 이 유다를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박국은 더 큰 고민을 호소합니다. “악인을 멸하기 위하여 더 큰 악인을 보내는 것이 옳으니이까?”하고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한 마디로 왜 더 큰 악을 허용하시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 거대한 악을 허용하시고 악인이 의인을 삼키고 괴롭히는 것을 내버려 두시는 것, 이것에 대한 이유, 혹시 이것이 기도의 내용이었던 분이 우리들 중에 있지 않으십니까. 악에 의하여 고통당하신 분, 고난을 겪으신 분, 누구나 궁금해 할 질문입니다. 이 악한 세력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존재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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