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 하나님께 사명 받은 사람이 귀하게 쓰임 받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을 들이셨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사명 받은 사람이 그만 사명을 감당하고, 즉 축복을 받고는 그 믿음이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젠 하나님의 사명보다 온통 그의 눈에 이삭의 재롱이 가득하고, 이삭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러운 것을 하나님은 우려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누구에게나 이삭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권력일수도 있고 자신의 애인일 수도 있고, 특히 자식을 가진 부모는 자식이 어떤 땐 하나님보다 더 귀중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체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네가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것 너 없어도 나를 믿을 수 있니, 그래도 나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니.” 하나님은 이것을 체크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우선순위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 못 견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선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로 대접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라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최고의 자리에 있으셔야 하는 데 그 이유는 그 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 유일한 아들, 너무 사랑스러운 독자 예수를, 하나님의 기쁨인 독생자를 바로 나를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고로 고귀한 사랑의 대상을 나를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자리를 요구할 자격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연당하신 적 있으십니까. 누군가가 나를 세컨드 취급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그가 나에게 있어 최고인 것처럼 나도 그에게 있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은 연애 감정에 있어서 당연한 것입니다. 연애를 할 때도 서로에게 절대적인 사랑이 있을 때 결혼까지 성공하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두 번째, 아니 세 번째쯤 될까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 남성을 믿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진정성은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로 가치 있고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믿고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당신 한 분만으로 족합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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