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원하시는 인간관계의 해법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어렵습니다. 당하고 당하고 살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밥까지 떠먹여주고 발까지 씻겨주고 기도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저도 적지 않은 나이라 많은 일을 겪었는데 배신도 당해보고 실연도 당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수모도 당해보고 당해보기도 많이 당해보았습니다. 저는 어떤 스타일이냐면 죽어라 미워합니다. 저도 자존심이 강해서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질입니다. 그런데 막상 상대방한테 복수라던가 모진 한마디도 못하는 스타일이예요. 그냥 저 혼자 죽어라 미워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하다보면 가슴이 아파요. 나도 나쁜 년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보면 그 사람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합니다. 동질의식이 생겨요. 그리고 어느 새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사랑하기는 힘든 과정입니다. 원수의 발까지 씻겨주는 것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사람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역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큰 사람은 사랑의 역량이 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은 원수가 아무리 짓밟아도 아무리 당하고 당해도 넉넉합니다. 그리고 원리를 압니다. 그 한 사람을 사랑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압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자 명령입니다.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즉 계명이기 때문에 명령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유언을 남기십니다. 그 유언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님께 죄송한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계명을 지키지 못했을 때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세대는 그 미안한 마음도 없습니다. 나도 당하면 너도 똑같이 당해야 해. 그리고 원수가 잘못 되기를 바라고 원수가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이 치신 거라고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요즘 인문학에서, 심리학에서 그리고 온통 자기계발서에서 자기사랑을 너무나 강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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