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들은 자기 이익에 참 밝고 전혀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업문화도 수당을 더 준다 해도 30분도 더 초과근무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회식자리도 가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철저히 따지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희생을 입에 올리려고도 하지 않는 현실이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동시키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이야기입니다. <낯선 이와 느린 춤을>의 저자도 좋은 직장을 가진 커리어우먼이었는데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그 희생의 삶 속에서 고귀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희생이 더 이상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귀한 것,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희생을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아마 그것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사랑이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하고 고맙게 여기게 합니다.

 

어느 날 케이블 TV를 보았는데 70대 노인이 자폐증인 아들을 돌보고 둘이 사는 사연을 들었습니다. 이 노인의 아내는 일찍 돌아가셨고 70대 노인이 집이 없어 70만원 주고 차를 사서 그 안에서 기거 하면서 밥도 해먹으면서 자폐증인 아들을 돌보고 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자폐증인 아들이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 70대 아버지가 아무리 정성스럽게 해줘도 다 골라내고 안 먹는 겁니다. 그렇게 아들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아버지 그늘진 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자폐증 아들 시설에 보내고 자기 혼자 살아도 힘든 삶인데. 무엇이 그들을 그늘지지 않게 만들었을까.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비참한데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하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그 아버지는 하나도 희생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희생의 가치는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 많이 희생을 잘못되고 건강하지 않은 정신으로 정의해 버리고 비판하는 데도 여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에 에볼라라는 전염병이 서아프리카에 창궐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에볼라가 발병되었을 때 희생자의 70퍼센트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 에볼라라는 전염병은 고열과 함께, , , , 항문 등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기괴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아픈 모습을 보고 악마가 저주를 내렸다며 다가가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그런데 전염되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자식의 병상을 지킨 어머니들, 그 어머니들이 거의 희생이 된 것입니다. WHO 전문가들은 이 아프리카 어머니들의 이 무모한 사랑을 막도록 에볼라가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38년이 지난 아직도 희생자의 75퍼센트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희생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원인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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