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섭섭해 하면, 어떻게 보면 악을 사용하시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그 섭섭함이 상처로 남고 쓴 뿌리가 되어서 우리 내면에 남게 되면 우리가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는 항상 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섭섭함, 나의 내면의 상처, 쓴 뿌리가 아 정말 하나님 싫다, 그래 아니야 하나님은 본래부터 없는 거야로 변하는 것입니다.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크리스천 새내기 대학생 1학년과 철저히 무신론자인 철학과 교수가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가지고 멋진 승부를 벌이는 영화였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한다 라는 측의 변호사는 크리스천 새내기, 검사는 철학과 교수, 배심원은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영화 결말은 신은 죽지 않았다(God's not dead)였고 모두 기립박수였습니다. 이 한편의 영화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에 대한 답이 다 나왔습니다. 자세히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저는 거기서 철저히 냉정하고 못되게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그 철학과교수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이 철학자가 무신론자가 된 연유에는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 교수가 12살 때, 크리스천이었던 엄마가 암에 걸렸습니다. 이 어린 아들은 애절하게 엄마가 죽지 않게만 해주신다면 뭐든지 다하겠다고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I hate God이 되었고, 이 교수에게 지식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없다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앞장서서 증명하는 철저하게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도 제가 아시는 분 중의 딸이 시한부였는데, 이 딸을 고치기 위해서 사방팔방 애쓰시다가 이 분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금식기도를 하면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금식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20일을 금식 기도하다가 못 버티고 기도를 멈췄습니다. 그러나 딸은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런 하나님 믿기 싫다. 아 하나님 싫다. 결국 하나님은 본래 없었다 라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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