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좇아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라 라는 것은 성령이 먼저 우리 안에 계시고 인도하고 계시고 있다 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소욕 때문에 우리가 자꾸 거스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불러 불러 하면서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충만한 역사를 거슬리지 말고 그 역사를 따라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서 운전하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경찰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강가에 사는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그렇게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길에 의해 인도되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를 거슬리지만 않아도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조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그런 책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조건들이 다 이루어져야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중 아무도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성령의 내재하시는 역사에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시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서 우리가 거스르는 것이고 우리가 따르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원치 않아서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마서 8: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탄식하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안타까움과 괴로움과 아쉬움과 근심을 가지고 우리 안에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은 내 안에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방해했던 나의 육체의 소욕, 죄악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운전을 잘 한다고 했을 때, 그 흐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자존심으로 남의 가는 길을 막지 않고,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렇게만 해도 “잘했다”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거스르지 않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 삶에 많은 열매가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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