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이라는 영화가 관객 1700만을 동원하며 화제를 낳았습니다. 저도 <명량>이라는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가 있습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이순신 장군이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이순신에게 어떻게 12척의 배를 가지고 330척이나 되는 왜군과 싸울 수 있습니까. 우리 수군들은 두려움에 질려 도망을 가고 있는 형편인데, '저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순신이 대답합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은 적군도 아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저는 이 대사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대사도 인상 깊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아들이 ‘어떻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하니까. 이순신 장군이 대답합니다.
“죽어야겠지, 내가”
죽음을 각오한 이 한마디에서 이순신장군의 필생즉사 필사즉생 이라는 말이 진정으로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도 이순신장군의 진정으로 죽을 기개로 전투에 참여하는 모습은 수많은 백성들에게, 부하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제가 여기서 영화를 분석해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두려움, 이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명량>에서처럼 나보다 더 큰, 더 센 상대를 만났을 때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릴까.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가 대한 그런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라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너무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이 행복이 언젠가 사라져버리지는 아닐까 그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우리를 엄습해 오게 될 때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순신장군의 말처럼,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씀과 사유로의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장. 더 적극적인 극복방법은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 (0) | 2019.11.12 |
---|---|
2장. 두려움의 극복은 두려움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 (0) | 2019.11.10 |
5장. 감성에서 영성으로 (0) | 2019.10.09 |
4장. 우정과 공감의 눈물 (0) | 2019.10.08 |
3장. 감성의 부활 그리고 예수님의 감성 (0) | 2019.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