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부활, 이제는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감성적인 분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신성모독일까요? 실제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세 번 우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고, 누가복음 19장에서 예루살렘 입성 후 그 성에 있을 앞으로의 심판을 내다보시고 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히시기 그 바로 전에 기도하시면시 우셨습니다. 그 외에 예수님께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무수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Compassion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 Compassion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감성과 예수님의 인격적 자질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Compassion란 말의 원뜻은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며 예수님의 무리를 향한 심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Compassion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 슬픔, 아픔에 대한 깊은 인식이나 공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이 감성적인 분이셨다는 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시기 전에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 본문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에 포커스를 두어 예수님이 죽음도 이기시고 죽음도 주관하시는 신성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어 해석이 되어왔습니다. 기적을 베푸시기 이전의 예수님의 마음의 동요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아의 눈물에 그리고 함께 온 유대인들의 눈물에 마음이 애잔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은 “얼마나 그를 사랑했길래”라고 말합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에 대한 우정과 사랑의 눈물, 사람들의 눈물을 보고 흘리신 공감의 눈물, 죽은 나사로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눈물. 그 눈물에 이제까지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리라” 하고 몇 번이나 마르다 에게 확신을 주셨고, 마르다도 몇 번이나 믿음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 연약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예수님도 또한 인성의 연약함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물에 공감하고 그 마음이 동요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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